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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방학에 단 둘이 간 곳은 나리타였다. 주말에 다 같이 가기에는 가계에 압박이… 숙박비 두 배 식비 네 배라 싸고 알차게 가려면 역시 평일이다.

 

스카이라이너에 타자마자 테이블 내리고 편의점에서 산 점심을 펼치고 쓰레기 봉다리를 걸어두는 곰돌이

알아서 챙긴 1박 여행용 가방에서 알콜 티슈도 꺼내 손도 닦는다. 야무지다 야무져. 저걸 챙긴 지도 몰랐다.

하루는 몇 년 전부터 비행기에 관심을 보였다. 시작은 탑건 매버릭 영화였다. 미니온즈를 네버엔딩으로 보던 아기가 탑건을 (20년 전 버전까지) 네버엔딩으로 재생하더니 도서관에서 비행기 관련책을 읽고 또 읽고 파일럿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봐달란다.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일단 무언가 꿈이 생긴 게 너무 기뻐서 나는 속으로 ‘됐다!’ 소리쳤다. 목표는 사람을 달려가게 하고 그 핑계로 뭐든 열중할 수 있게 해 주지 않을까? (어쨌든 배워나가면 파일럿이 안돼도 비수무리하게 대충 그 언저리라도 아니 걍 뭐라도 되겠지 야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공항에 온 자체가 너무 좋은 곰돌이.
작은 트렁크 가방을 버스 짐 칸에 실을까 들고 탈까 고민했는데 운전석에서 가방을 실어주러 나오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그냥 들고 탔다. 천천히 비틀비틀 나오시는 모습이 관광버스의 높은 계단에서 구르시는 건 아닌가 위태위태해 보였다. 하루랑 둘이 눈을 마주치면서 그… 그냥 들고 타자.. 암묵적 합의. 하루가 운전벨트를 단단히 매면서 말했다.
“엄마.. 운전하는 할아버지 너무 할아버지 아니야? 괜찮은 거야?”
“아까 내리실 때 비틀비틀하시더라고”
소곤소곤 우리가 걱정을 나누고 있을 때 버스가 출발했다. 아닛!! 뭐지 이 놀라운 승차감! 할아버지는 산중의 고수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버스를 다루셨다. 마치 신호를 예언하는 듯한 타이밍. 쥐도 새도 모르게 작동되는 브레이크. 아무도 내가 좌회전한 사실을 모르게 하라. 하루랑 나는 번갈아서 할아버지 운전 진짜 잘하신다고 감동하며 이 반전을 즐겼다.

평일 나리타 힐튼 호텔은 1박에 19,888엔이었다. 어차피 하루는 많이 못 먹으니까 조식 불포함.  

1. 등급 좋은 호텔
2. 수영장 이용 가능!
3. 1층에 편의점 있음
4. 공항도 놀러 갈 거라 공항 바로 옆

근데 엘리베이터가 내 스탈이지 뭔가.
나는 어지간히 맘에 들었는지 나중에 사진첩을 보는데 죄다 엘리베이터 사진이었다. 별로 하루 얼굴을 안 찍었어. 맙또사

 

공항 활주로가 촤악 보이는 방이 있었는데 가격이 두 배였다. 그래서 그냥 트윈 룸으로 예약했다. 그래도 하루가 들어가자마자  “엄마! 여기도 경치 너무 좋네!” 계속 칭찬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여자를 좀 아는구만

알람시계에 유에스비 충전 구멍 천재적인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구석구석 내 핸드폰으로 찍어놨다. 내가 블로그 하려고 어디 여행 가면 이렇게 찍는 걸 흉내 내나 보다 ㅋㅋㅋ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더니. 이유도 모르고 그냥 하고 있는 얠 보니까 한 가정의 문화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겅가봅니다.

수영장 층에 있는 엘리베리터도 너무 맘에 듦.

홈페이지 사진

같은 건물이 침실. 훗 질릴 때까지 놀게 해 주마 플렉스~ 이렇게 작정했지만 세 시간 넘게 수영하고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 그만 올라가자 부탁했다. 사실 한 시간 반 경과됐을 때 이미 가고 싶었는데 본... 본전을 뽑아야 해.. 그 일념으로 세 시간 버텼다. 

저녁밥을 사러 1층 편의점에 갔을 때였다. 방금 막 도착한 투숙객이 모두 승무원이었다.
“하루야!! (소곤소곤) 저기!! 파일럿 파일럿이야”
“(소곤소곤) 어디!! 어디!! 엄마 캐나다 파일럿이야. 국기 봤어! ”
맛있는 조식 뷔페와 (우린 안 먹었지만 리뷰가 좋았다.) 헬스장 수영장 완비된 대형 호텔이 국제공항 근처에 있어야 할 이유는 외국 승무원들을 노린 장사였나 보다. 크… 이건 모르고 왔는데 너무 좋네.

나는 우동과 군만두를 골라서 포장을 살짝 뜯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마늘과 고기냄새가 진동~ 워매. 빨리 방으로 날라야겠다. 다행히 하루랑 둘이 탄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없어서 그대로 직행하고 싶었는데
“어! 엄마 엘리베이터 버튼이 터치식인가 봐 그냥 손으로 쓸었는데 다 눌려졌네?”
이좌식.. 3층 4층 5층 6층 층층이 버튼을 다 눌러놨다. 문이 층층마다 계속 열려. 취소도 안돼.
“아!! 엄마 냄새 때매 빨리 방에 가고 싶었는데 이러다 누가 타면 어떡해” 하는 내 얼굴을 보고 턱을 든 채 흰자까지 보이면서 꺽꺽꺽꺽 웃는다. 쫘증나 ㅋㅋㅋㅋㅋ

사서 먹고 있을 때 창밖이 어둑해지자 하루가 소리쳤다.
“엄마!!! 저거 활주로 아냐!!??”

헉!! 구러네? 이 방에서도 보이네?
심지어 착륙하는 비행기가 우리 방을 지나 공항으로 향했다.

얼른 Flight radar 24 어플을 켰다. 전 세계 항공 정보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어플이다. 왜 이런 은혜를 세상에 베푸는지 황송할 정도로 정확하고 기능도 많고 너무 재밌다.

육안으로는 훨씬 더 가까이 잘 보임

다음에 올 비행기 기다렸다가 착륙하는 걸 확인하기를 11시쯤 운행정보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반복했다.

굿모닝
소세지

아침에도 나리타 1 터미널 활주로에 도착하는 비행 스케줄 확인하느라 바쁜 소세지. 그 덕분에 나는 대중탕에서 목욕하고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었다.

즐거웠던 나리타 힐튼

안심 안전의 나리타 힐튼 셔틀버스가 데리러 오고 있다. 이제 신뢰밖에 없는 저 버스.

다음 코스는 나리타 공항 전망대.

하루는 그 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비행기를 봤다.

나능 이제 점점 시간이 안 간다. 끄적이다 점심도 먹이고 셀카도 찍고 뭘 해도 아직 정오.

안 되겠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항공과학박물관 기념품 샵을 발견해서 물어봤다.
“박물관까지 어떻게 갈 수 있어요?”
“버스가 있긴 있는데 차 대수가 많이 없어요.”

아항. 그렇군요.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버스를 한 시간 기다려야 한대서 택시를 잡았다. 10프로 할인권까지 주셨다. 원래 입장권은 천엔도 안 하는디…. 운영은 무슨 돈으로..

느닷없이 너무 좋아하는 항공과학 박물관에 오게 되어서 너무 좋은 곰돌이.
여기는 정말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자주 못 오는 곳이다. 공항 주변이라 가는 열차나 차 렌트비가 막대하게 든다. 지금생각해도 겸사겸사 여기를 들린 건 브라보였음.

시설이 너무 오래돼서 수명을 다 한듯한 느낌이었지만 하루는 상관없이 즐겼다. 이런 데는 입장료 좀 넉넉히 받고 업그레이드해 주었으면…

그리고 다시
버스- 나리타 공항 - 스카이라이너로 우에노까지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버스를 잘 못 타고 말았다.
허허허…
버스가 공항이 아니라.. 나리타 시내로 들어가네. 다시 돌아가기엔

하루가 꼴까닥 잠이 들어서 불가능했다.

그래서 결국 40분을 달려 치바에 있는 나리타 역에 도착. 흐미..  여기서 집에 못 가는 건 아니지만 쾌속으로 50분 만에 우에노에 도착할 길을 1시간 반 걸려 보통 전철을 타고 우에노에 도착해야 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 루트를 열심히 설명하니 엄마 너무 좋은데? 이게 추억이 될 거야.라는 곰돌이. 여자 맘을 너무 잘 알아. 러브야 너는.

스카이라이너보다 풍경도 잘 보여서 좋단다.
“엄마 다음에도 꼭 나리타 힐튼 호텔에서 자고 항공박물관 갔다가 나리타역에서 전철 타고 집에 가자. 꼭 이 코스로 또 오자.”

“새… 생각해 볼게.”

어… 엄만. 자극을 더 갈망하는 사람이라 늘 새로운 게 좋크든. ㅋㅋ 다른 호텔 갈꼬야 ㅋ

여차저차 이야기 한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와서 케군에게 조잘조잘 있었던 일 다 말하느라 매우 바빴던 저녁이었다.
“파파. 엄마랑 하루랑 둘이 저녁밥 먹는데 얼마 들었는지 알아? 2천 엔도 안 했어. 파파랑 가면 술 마시고 안주시키고 아마 5배는 더 들었을 걸.”
이 말부터 했다.
어쩜 너는 애미를 왜 이렇게 잘 아는 건데. 러블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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