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석으로 빨아들인 듯한 철가루 헤어스타일로 일어났다. 조식을 제공하는 곳이라 식당으로 고고. 하루는 갓 구운 빵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에노시마 답게 시라스 (찐 잔멸치)를 밥 위에 올려 든든히 먹었다. 그때 늘 그렇듯 하루가 물을 엎었다. 평소 같았으면 원망의 눈빛을 막 쏘고 조심 좀 하지 그랬냐고 참지 못해 한 마디씩 꼭 했을 텐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야 괜찮아??? 다친 데는 없는지 걱정만 되고 사람을 불러 죄송한데 바닥을 적셨네요. 하며 대처에 바빴다.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이번 여행 때 둘째 날 짐을 줄이려고 일부러 사이즈 작은 파자마를 가져가서 마지막으로 입고 호텔에 버리고 오려했다. 물을 엎지른 그 시간에 하루는 어차피 버릴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직원분이 오셔서 애기 옷 ..
에노시마라는 섬은 섬 전체가 에노시마 신사(절)를 위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상권과 주변 환경의 중심엔 그 절이 있다. 원래는 에노시마 이와바라는 江の島岩場 동굴 안에 에노시마 절이 있었다.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동굴 밖으로 이전했기도 하고 안전상의 이유로 옮겼다고 들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이렇게 초를 하나씩 주신다. 사실 이게 없어도 보이긴 하다. (칠흑처럼 깜깜한 곳은 아님) 미취학 아동에겐 초 대신 초모양 전기불을 주는 걸 본 하루는 자기가 당당히 위험한 초를 취급할 수 있는 엉아가 된 것에 자부심이 폭발하였다. -엄마, 초등학생이 된 다음에 여기 와서 너무 좋았다. -엄마 저기 봐봐, 쟤는 진짜 초 아니다. 애기네 애기. -엄마 초등학생은 돼야 불을 잘 들지 그치..
우리 여행의 첫 시작은 작년에 함께 본 한 만화부터였다. 직역하면 ‘나 홀로 여행 1학년생’ 이란 제목이다. 하루가 빌려달라며 도서관에서 골라 왔다. 본인이 1학년이니 진짜 초1이 주인공인 줄 알고 재밌어 보였던 것이다. 한국에도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림이 몽실몽실해서 너무너무 추천하는 책. 혼자 여행 가는 일이 처음인 주인공이 여행 홀로서기하는 과정이 위트 있고 어찌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지 신이 된 기분으로 (전능하진 않고 보고만 있어야 하니 무능함이 느껴지지만)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함께 여행하는 착각에 빠진다. 혼자 간 가마쿠라 편이었던가? 밥 집에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결국 편의점 음식을 싸 들고 호텔에서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엥?? 그게 용기가 안 난다고? 엄마는 좀 이해가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