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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추짱 여기여기~ 잘 지냈어?
추: 아... 동짱... 오랜만이다. 너무 힘들어 이 습기 ...

추: 뭐하면서 지냈어.
동: 다이어트.
추: 뭐? ㅋㅋㅋㅋ

추: 밥 그게 다 먹은거야?
동: 응. 천천히 먹었더니 탄수화물은 이제 안 들어가.
추: 왜 이래? 지금 뭐하는 (짓)이지? 뭐 때매야.

동: 아니... 코로나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추: 코로나는 먹는 낙에 지내는 거 아니야?
동: 그러니까 ㅋㅋ 그게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나도 먹었지. 신나게 먹고 정신을 차려보니 인터넷, 방송 어딜가도 먹는 이야기만 하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슈퍼나 마트 밖에 없단 사실이 너무 지긋지긋한거야...
추: 하긴... 먹는 일 뿐이지.
동: 그래서 남들이 먹을 때 나는 빼 보기로 했어.
추: 헐....
동: 차 마시러 갈래?
추: 더 말해 봐. 빨리 당장 나우.

동: 그거 말고도 내가 작년 겨울부터 사부작사부작 준비해서 쥐꼬리만했지만 겨우 돈을 벌기 시작했잖아.
추: 어어. 한국어 수업도 하고 파스타집 아르바이트.
동: 한국어 학생도 주에 2명이나 확보했고 내가 그 사이트에서 평판도 좀 얻어서 수업희망하는 사람도 늘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약간 기반이 잡혀가는 느낌? 되게 좋았거든. 그리고 아르바이트도 정말 별 거아니지만 용기를 냈던 순간들이 많았다고.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메뉴를 외우고. 아 그 메뉴 계절 바껴서 또 다시 외워야 돼. 하아... 계산 하는 법 배우고 기계 익히고... 일본어로 서비스하고. 메뉴얼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이제 좀 익숙해져 갈때였는데. 2월부터 지금 계속 못하고 있잖아. 뉴스에서는 끄덕 없을 거 같던 항공업계 사람들 다 짤리고 잘 나가던 사업들이 속수무책으로 도산하고 다 파리날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아둥바둥해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생기면 다 소용없구나. 이런 무력감이 오는거야. 상실감이랄까 아주 잠깐이지만 엄청 허무함을 느낀거야. 내 인생도 인간이란 존재도. 거창한데 암튼 우울했어.

 게다가 나는 계속 먹어서 얼굴 진짜 배 나오고 맞는 옷 없고 바지 안 잠기고. 아 놔... 사람이 살면서 행복의 기준이 다 다른거잖아. 자존감도 높아야 행복한거 잖아. 근데 나는 살이 찌면 자존감이 낮아져. 살 빠지면 하이힐 신은 것처럼 상쾌하고 굉장히 기분이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예쁜 옷을 입었을 때 더 행복해. 난 진짜 얼굴 주름 자글자글 해도 마른 사람들 보면 진심으로 너무 예쁘다? (마구 얼굴을 뭉대며) 얼굴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못생겨도 모델같고 유니크하고 멋있어보여.
추: 얼굴 이쁜거 보다?
동: 어어 (얼굴을 싸잡아문대며) 얼굴이 난 막 이래도 돼. 그래서 사진도 얼굴 이쁘게 나온거보다 날씬하게 나오면 더 좋아. 성형수술에 별 관심없는건 그래서 일 수도 있어. 근데 다이어트 방법 비포 에프터 이런 건 진짜 관심 많아.

추: 히야.. 진짜 사진 찍을 맛 나겠네
동: 턱선 살아 있지?
추: 이 각도. 여기네 이거 여기
동: 오오오!!! 프로는 다르구만!! 아.. 진짜 최고최고.
추: 장난아니다. 나도 할래.

동: 뭐?
추: 그거. 다이어트.

동: 진짜? 완전 응원하지!! 근데 너 음식 남기면 벌받고 못쓰고 이런 스타일이야? 음식 남기는 거 못하면 힘들어서...
추: 절대 아님. 난 음식을 남겨서 버리나, 똥으로 싸서 버리나 똑같다고 생각해. 플라스틱도 아니고 환경오염도 아니고
동: ㅋㅋㅋㅋㅋ 와아 ㅋㅋㅋㅋㅋㅋ 명대사다. 나 지금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 전율 소오름.

동: 진짜 다이어트는 좋은 일 투성이다?
추: 예를들면?
동: 돈이 안들어. 식구들 먹일 것만 딱 사다 놓고 난 낫또나 샐러드만 먹거나 정말 먹을만큼만 차리니까 그렇게 버라이어티하게 사다 놓던 것도 없어지고 왠지 막 쟁여놔야할 것 같던 심리도 버렸고 장을 봐도 돈이 너무 안 들어.
추: 그거 우리집에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 식비만 들어. 식비가 너무 많이 들어!!
동: 그리고 물을 진짜 많이 마시거든? 그러니까 피부도 좋아지고 배고프기 전에 야식 먹고 싶기전에 자니까 일찍자고 푹자고.
추: 오오오오오
동: 살이 찌면 좋을게 없거든, 일단 몸 둔해지지. 피부 얼굴 노화오지. 기분도 우울하지. 걸릴 병도 많아지고
추: 우울하다는 거 너무 공감이야.
동: 다이어트하면서 점점 기분이 상승하니까 공부도 하고 싶고 전보다 책도 많이 읽고 코로나때 칩거하면서 먹을 때보다 능동적이고 엄청 활기있어졌어. 이제 밖에 나가서 만보씩 걷고. 살을 빼겠다는 목적으로 처음엔 걷지만 나가서 걷고 바깥공기 쐬다 보면 절로 우울함도 없어지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
추: 그거 너무 좋다.

동: 잠시 느꼈던 상실감이랑 무력감에서 다이어트를 시작했잖아. 그리고 내가 살이 빠져서 벗어난 게 아니더라고. 내가 살을 빼니까 벗어난 거야. 내 의지로 변화 시켰다는 사실이 중요해진거지. 나에게 필요한 건 체중감량보다도 내가 내 인생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던거 같애. 내 계획이고 내 의지고 그 어떤 외부의 힘에 영향받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삶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기는거야.
추: 그래, 그거 나도 느껴야겠다.

동: 내 결혼반지 봐. 이렇게 헐렁해졌어.
추: 왘ㅋㅋ 나 지금 꽉 끼는데.
동: 내가 47킬로때 이걸 샀거든. 그때 판매하시는 분이 그러는거야. 임신 출산 하시면 보통 다들 사이즈가 늘어나서 좀 넉넉하게 많이 하세요. 근데 나 지금 그때보다 살 더 빠졌어. 헐렁한 반지 볼때마다 되게 생각난다?
추: 보통 다들 사이즈가 늘어나는데 말이지?
동: 어!!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거란거.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거. 딱 맞게 그냥 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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