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일본은 밤타령이 시작된다. 밤과자, 밤떡, 밤빵, 밤밥, 밤케이크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일본은 절기마다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아이템처럼 제철 음식으로 어떻게든 매상을 올리려 열심이다. 그리고 잘 먹힌다. 가는 곳곳마다 고구마랑 밤 제품이 지금 아니면 못 먹을 것처럼 기간한정을 앞세우면 다음 해에 내가 살아있을지 장담은 못하니 꼭 먹어야 할 거 같다. 밤 타령이 시작되면 (다른 건 안 그럽니다.) 난 혼자 머릿속으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바다에 어얼싸 돈바람 분다. 진짜 밤타령을 한다. 이해받지 못할 똘짓거리를 말할 데가 있어서 참 좋구나. 밤 가공된 음식 별로 안 좋아하지만 어쩐지 몽블랑 케이크는 매년 한 두 번 시험해 보게 된다. 비주얼에 끌려서. 하지만 늘 지나치게 달아서 ..
아르바이트 가는 길이었다. 출근길 피크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사람들 발걸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 계산된 속도로 한치의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 결의에 찬 자세들이었다. 구로디지털 단지로 출근하던 서른의 나도 그랬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8시 30분에 업무시작이라 1분이라도 더 잠을 자기 위해 출근에 필요한 이동 시간은 극도로 빡빡했다. 중간에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지각의 나락. 출근길에 정신 집중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어폰으로 크게 노래를 들으며 세상과 단절한 채 빠르게 걸었다. 하루는 어떤 중년 여성이 차가 고장 났는지 길거리 사람들에게 애원하듯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피해 갔다. 그중에 ..
야구는 모르지만, 아니 모든 스포츠를 모르지만 오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너무너무 좋다. 인간에게 약점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도록 외모도 실력도 성격도 알면 알 수록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가장 큰 매력은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임. 저런 사람을 아들로 두면 어떤 기분이려나. 나는 가끔 평범한 하루를 보면서도 어떻게 내 속에서 저렇게 착한 아이가 나왔을까 경이로울 정도인데 명실공히 세상을 경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자기 아이라면 내내 기분이 어떨까. 얼마 전 오오타니 쇼헤이 구단 이적에 일본이 축제 분위기였다. 10년에 7억 달러 계약. 1019억 엔? 9000억 원? 저런 돈이 어디서 나는 건지 모르겠다. 놀라운 스포츠의 세계였다. 계약 금액에도 놀랐지만 내가 너무 놀랐던 건 뉴스마다 도배..
11월엔 나도 좀 감기에 걸렸었는데 초등학교는 무슨 저주받은 것처럼 코로나, 독감, 전염성 어쩌고저쩌고 돌림노래처럼 돌고 돌아 매일매일 3분의 1이 결석을 했다. 전문가들은 마스크 벗고 처음 맞는 겨울이라 밀린 숙제처럼 애들이 면역력을 키우는 중일 거라고. 한국도 그랬다면서요? 하루에게는 11월 어느 주말에 돌림노래 차례가 왔다. 배가 아파 뭔가 기분이 안 좋아.. 이 말을 할 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와-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나도 신기했다. 육아 짠밥? 하루야! 빨리 화장실로 가! 화장실!!! 충분히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싫어했다. 그리고 거실에 다 토해냈다. 그나마 내 예견으로 러그 한 장에 가둬서 큰 피해를 막았다. 하루는 엄마 미안해.. 하며 토를 했다. 으이구. 너 이건 진짜 미..
작년 일이 되어버렸네? 지구가 여름엔 달달 달구어지더니 겨울에 하나도 안 추워서 땡잡은 기분이다. 나는 겨울이면 손발이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데 그것 때문에 겨울이 너무 괴롭다. 어떤 주부가 매년 집 안에서 발에 동상 걸린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남 일이 아니다. 이게 상당히 가능하다. 그래서 포근한 12월이 너무 감사했다. 1월 중순에도 아직 15도를 넘는 날이 많다. 이렇게 어물쩍 이번 겨울을 넘기려나 내심 기대 중. 일본 인형이 서 있는 가옥을 자세히 보니 미용실이었다. 인테리어부터 반전매력… 저 봉고차 어떻게 주차했지..?블로그를 시작했던 이글루스가 문을 닫았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게 슬프지만 막상 이사를 하려니 깜깜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거지. 의외로..
어느 영어권 인스타에서 또르띠야 레시피를 발견했다. 프라이팬에 똘띠야를 한 장 깔고 위에 시금치, 계란 치즈를 올려서 잘 구운다음 반으로 접어 먹는 방법.처음엔 어설펐는데 두번짼 성공했다.진짜 맛있어요. 여러분. 샐러드용 닭가슴살이나 머슈룸. 단백질과 채소 재료를 취향대로 바꿔도 좋다. 일본에선 배추 반 포기를 사면 국에 넣고 겉절이로 먹고 쬐끔 김치 만들고 남아버린다. 남은 걸 전으로 부쳤더니 케군이 헐레벌떡 막걸리를 담아 온다. 부침개 할 거면 미리 말해야지 하면서 입꼬리 계속 상승 중. 일본사람 중에 부침개 싫어하는 사람을 아직 본 적 없다. 케군이 인터넷으로 산 달달하고 짭짤한 고기반찬인데 너무 짜서 어지러울 지경. 이런 건 밥 위에 올리면 간이 딱이다. 니쿠자갸. 밥 위엔 유카리 가루. 케군이 ..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요상한 생리 전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검색해도 나 같은 사람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았다. 뭐냐면 생리 전만 되면 신기하게 결벽적인 구석이 생긴다. 애지중지 자라지도 않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습한 반지하 말곤 살아 본 적 없고 평소엔 안 그러는데 생리 전만 되면 더러운 걸 참지 못하겠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생리 전에 화가 난다. 그때마다 지금 이 분노의 원인은 뭘까 곰곰이 거슬러 올라가 보면 꼭 지저분한 집안, 정리 안된 물건들, 흘리거나 묻은 이물들이 방아쇠였다. 그럼 깨끗하게 치우게 되고 좋지 뭐 하겠지만 참 골칫덩이인 게 아이랑은 끊임없이 더러운 상황이 생기는데 내 인내심이 생리 전과 후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아이에게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세상 아무렇지 않았던 집..
하와이에서 묵었던 호텔 바로 앞 쇼핑몰은 물이 흐르는 정원처럼 꾸며져있었다. 그때 우리는 왜 거기를 지나갔었더라? 아 나랑 케군이 하와이 구석구석 거닐면서 구경하고 싶었었다. 무슨 가게가 있나 사람들은 어떤가 이 동네는 어떤 분위기지. 그런데 하루는 그게 재밌을리 없었다. 물놀이하러 언제갈건지만 중요했는데 마침 나는 기분이 좋고 정원 물 속에 플라스틱 스푼이 하나 보였다. -하루야, 저 스푼 보이지? 쟤는 지금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거짓말. -진짜야. 우리가 눈치 못채고 있을 뿐이지 쟤 움직여. -어떻게 알아? -쟤는 사실 3층 푸드코트 카레 집에 있던 스푼이었어. 우리도 밥 포장할 때 거기 스푼 받았지? 그 통에 들어있었어. 어떤 사람이 카레를 포장해서 스푼을 받고 날이 너무 좋아서 여기 1층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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