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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자

만 8살 하루의 겨울

Dong히 2024. 1. 16. 16:20

11월엔 나도 좀 감기에 걸렸었는데 초등학교는 무슨 저주받은 것처럼 코로나, 독감, 전염성 어쩌고저쩌고 돌림노래처럼 돌고 돌아 매일매일 3분의 1이 결석을 했다. 전문가들은 마스크 벗고 처음 맞는 겨울이라 밀린 숙제처럼 애들이 면역력을 키우는 중일 거라고. 한국도 그랬다면서요?

하루에게는 11월 어느 주말에 돌림노래 차례가 왔다. 배가 아파 뭔가 기분이 안 좋아.. 이 말을 할 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와-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나도 신기했다. 육아 짠밥?

하루야! 빨리 화장실로 가! 화장실!!!
충분히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싫어했다.
그리고 거실에 다 토해냈다. 그나마 내 예견으로 러그 한 장에 가둬서 큰 피해를 막았다. 하루는 엄마 미안해.. 하며 토를 했다. 으이구. 너 이건 진짜 미안해해야 된다.

왜 가기 싫었냐니까. 토하기 싫었단다.
아니 할 수밖에 없으니까 가란 건데 안 가면 그걸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냐. 그게 무슨 사고회로다냐.

아픈 아이 토닥이며 케군이랑 러그를 버리고 닦고 씻겼다. 그리고 속이 편해지길 바랬는데 새벽에 복통으로 깼다. 태어나서 일본 응급실에 가 본 적이 4번 있다. 그때마다 솔직히 잘하는 건지 확신이 안 생긴다. 진짜 눈앞에 피가 철철 나야 그제야 확신할 수도…

그리고 이 날도 일본 최고의 의료기관 도쿄대학교 응급실에 오게 됐는데 도착하니까…. 안 아파….
이래서 내가… 확신이 안 서…

제일 뻘쭘한 건 본인이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케군의 기분은… 어땠을지… 그냥 안 물어봤다. 우리 둘 다 애가 아프다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윤리적으로 에러인 거 같아 입 밖에 안 냈지만 솔직히 우리 애 좀 많이 엄살인 거 같아…

그리고 이 날 한 가지 깨달은 건 대학병원이건 동네 진료소건 의사를 맹신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내과 진료가 그렇다.

도쿄대 의사 선생님은 배가 아프다는 증상만으로 너무 부족했고 무조건 진단은 내려져야 하니까 지난번 변비 치료 기록을 보고 변비로 결론지으셨다.
근데 난 계속 찜찜했다. 어제도 화장실에 갔고… 이건 아닌 거 같았는데… 며칠간의 정황과 주변 학교 정보를 증거수집하듯 모아서 위장염이 아닐까 추측했다. 응급실에 다녀온 다음 날 나는 동네 위장 전문 내과 선생님한테 예약했다. 위장 쪽이 맞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 결석을 했더니 하루만이 아니었는지 전체 메일이 왔다. 위장염 유행으로 이틀간 수업을 폐쇄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내과는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이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세심하게 물어보고 셀프로 어느 정도 알아보고 여러 가지 의심해서 돌보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다.  
내과 선생님들은 참 힘들겠다. 외과 명의는 자주 들어봤어도 내과에도 명의가 있을까? 점쟁이 스킬이나 셜록 홈즈 수준의 수사 스킬이 아니면 몇몇 흔한 증상을 가지고 어떻게 매번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을까.

주말 하네다 공항 나들이

파일럿 시뮬레이션 체험을 예약했다.
실제 항공기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동영상 촬영이 금지였다. 처음 간 체험은 설명 듣느라 바빠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다… 옆에 직원 할아버지가 여객기와 군용기 경험이 있는 만능 기장님이셨다. 은퇴하고 이렇게 비행기 관련된 용돈벌이라니. 인생이 덕업일치 셨을 거 같아 부러움.

하네다 공항 푸드코트에서 점심

휴지에 구멍

테이블의 구멍
어떻게 이런 구멍들을 발견해 내지?

하루 디카에 있던 사진을 털며
가을에 놀러 간 식물원에서 찍은 내 사진을 뒤늦게 줬다.

생생하게 찍었네~

둘이 영화 보러 간 날.

돈키호테 벽에

펭귄 두 마리가 기어 올라가고 있더라고
ㅋㅋㅋㅋ

요즘 안 찍는 착장 샷을 이렇게 대신 ㅎㅎ

유락초 역 앞에서
까눌레를 사 갔다.

티모시 샬라메의 <윌리 웡카>를 봤다.
<찰리의 초콜릿공장>을 너무 좋아해서 같이 두 번이나 봤는데 우리가 생각한 윌리 웡카가 아니어서 좀 당황했지만 속세에 찌들지 않고 순수하고 꿈 많은 윌리 웡카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근데 난 시니컬하고 드라이한 조니 뎁 버전이 훨씬 좋아.

개인적으로 <찰리의 초콜릿 공장> 영화를 진짜 좋아한다. 애미가 아이한테 심어주고 싶은 틀에 박힌 사회통념과 고정관념을 매우 극단적으로 시원하게 그려놨기 때문이다 ㅋㅋㅋ 게임하는 아이는 폭력적으로 자라고 물건 때려 부수다가 화를 입는다. 이 얼마나 교육적이얔ㅋㅋ 풍선껌 불던 아이는 자기가 풍선껌이 되어 화를 입는다. 아이고 어른이고 껌 쫙쫙 씹는 거  참 맘에 안 드는데 얼마나 교육적이야. 뭐든지 갖고 싶다고 하는 부잣집 딸은 욕심부리다 처리되는데 아이라고 은유적이지 않고 꽤 잔인하다는 게 충격요법 확실함.  그리고 이제 보니 주인공 아이가 ‘굿 닥터’의 프레디 하이모어였어… 두 번째 볼 때 눈치챘다. 너무 그대로 컸다. 잘 생겼다 잘 생겼어.

제일 나의 웃음 버튼은 가난하고 효심 깊은 주인공 아이 집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지 집이 말 그대로 기울어져있다.  문도 집도 삐뚤어져있어서 그 만화 같은 상상력에 빵 터진다. 게다가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침대에 누워 넷이서 동시에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설정이 과해도 너무 과해 ㅋㅋㅋㅋ 근데 아이에겐 이것보다 더 쉬운 설정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하루는 티모시 샬라메의 <윌리 웡카>도 엄청 재미있게 봤다. 영상이 예쁘고 선과 악이 확실해서 이해하기 쉬웠다.

도서관에서 구미 당길 거 같은 제목 위주로 책을 빌려온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보이는데 놔두는데 나름 상당히 머리를 굴리는 중. 목욕하고 여기 오래 서 있으니까 이 옆에 놔 볼까. 밥 먹을 때 딴짓하고 싶으니까 여기 놔둬 볼까. 한 20번 자리 옮겨서 겨우 한 두 번 걸릴까 말까이다. 오늘은 빨리 가서 자~ 엄마랑 같이 더 있고 싶음 같이 책 읽자 하고 성공.
한 번 스토리에 빠지면 꽤 진도가 잘 빠지는데 항상 그 시작이 어렵다. 어른도 그렇지. 좀 아쉬운 건 내가 맨날 빌리니까 내 취향 장르나 주제로 국한된다. 안 그래야지 싶어도 아마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닐 거다. 본인이 골랐으면 좋겠는데… 같이 도서관 가는 자체가 쉽지 않다.

산타 할아버지가 마츠모토 성 나무 조립을 선물해 줬다.

나는 한 번도 어릴 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아이 키우며 처음 알았는데 진짜 아이들은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더라. 동요나 동화 속이나 외국에만 존재하는 풍습인 줄 알았다. 대여섯 살 땐 그럴 수 있지 설마 초등학생이 이걸 믿겠어? 싶었다. 내가 어릴 때 산타를 믿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 감각을 전혀 몰랐다.

진지하게 하루가
엄마… 요즘 집엔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 어떻게 애들이 뭘 갖고 싶은지 일일이 하는 걸까…? 혹시 우리가 이사를 가도 찾아올까? 한 번씩 이런 말을 하면 너무 궁금하다. 다른 애들도 그런가..? 이게 일반적인가..?
케군은 어릴 때 어땠는지 물어봤다. 바보가 아니어도 보통 이 나이가 돼도 믿어? ㅋㅋㅋㅋ 케군도 머리를 긁적였다. ㅋㅋㅋ 자기도 어릴 때 언제까지 믿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2주 만에 완성한 마츠모토 성.
유럽 출신 산타 할아버지는 어떻게 알고 일본 고성을 선물로 주셨을까는 신기하지 않은 모양. 하루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 심장이 터지도록 좋아했다.  

아이 발을 보면 성장을 체감한다.
어른의 발이 되어 간다. ㅎㅎ
애기 발은 진짜 무슨 귀여운 도장처럼 생겼었다.
나는 애기들 몸 중 특히 쪼꼬만 발이 신체부위 중 제일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발을 맨날 주물럭주물럭했었다. 쪼꼬맣고신기해.

학교 개학식 날 일찍 집에 온 하루랑 피자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돈을 쥐어주고 슈퍼에서 혼자 재료를 사 오라고 했다. 야무지게 시킨 걸 사 오고 있었던 일도 재잘재잘 말해줬다.

-엄마, 계산하러 줄을 섰는데 내 앞에 나보다 작은 애기가 있었어. 근데 내 뒤에 있는 아줌마가 둘이 형제냐고 내 동생이냐고 물어봤어. ㅋㅋㅋ
-그래서 하루는 뭐라고 했어?
-아. 치가이마쓰. (아니에요) 이랬어.

별 거 아닌데 ㅋㅋㅋ 너무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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