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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이 되어버렸네? 
지구가 여름엔 달달 달구어지더니 겨울에 하나도 안 추워서 땡잡은 기분이다. 나는 겨울이면 손발이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데 그것 때문에 겨울이 너무 괴롭다. 어떤 주부가 매년 집 안에서 발에 동상 걸린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남 일이 아니다. 이게 상당히 가능하다. 그래서 포근한 12월이 너무 감사했다. 1월 중순에도 아직 15도를 넘는 날이 많다. 이렇게 어물쩍 이번 겨울을 넘기려나 내심 기대 중.

일본 인형이 서 있는 가옥을 자세히 보니 미용실이었다.
인테리어부터 반전매력…

저 봉고차 어떻게 주차했지..?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글루스가 문을 닫았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게 슬프지만 막상 이사를 하려니 깜깜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거지. 의외로 놀랐던 건 하나하나 글을 옮겨보니 생각 보다 큰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딱히 옮길 필요 없는 글들도 많았다는 이야기다.

정말 기억하고 싶은, 기록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달에 한 두 개. 많으면 세 개.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내 청춘 이야기가 100개 정도 에피소드로 추려지겠더라. 20대의 나는 100개 정도의 점들이었다. 하루에 10개씩만 옮겨도 열흘이면 끝나는 작업이다. 아득할 거 같던 일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 숫자에 실망하진 않았다. 생각보다 두둑하다 느꼈다.

기록하지 않았던 그 이전의 20대 초반은 단편적이고 애매하게 문득문득 어떤 장면들이 떠오를 뿐이다. 거슬러 올라가 스토리를 기억해내려고 해도 그게 진짜였는지 중간에 얼마나 내가 지어내고 있는지 믿음이 안 가는 기억들이거나 마치 예전에 봤던 삼류영화를 기억해 내는 기분이었다. 특별한 반전도 스토리도 없고 무명배우들이 뻔한 대사를 하는 그런 단편영화. 실제로 내 기억보다 다이나믹하고 진한 드라마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블로그를 시작한 후의 내 인생을 적어도 백여 개의 소중한 기억들로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잠시 어떤 형체를 손에 꽉 쥔 거 같은 느낌이었다.  읽어보니 하나하나 또 내 기억보다 재밌는 드라마가 많았다. 이제 막 블로그 이사는 서른 살로 접어들었다.

누구나 마음 한편에 무언가 이루지 못한 자신에 대해 초라함을 느껴본 적 있지 않을까. 자신의 SNS 구독자 1만 명 이하인 사람들 모두가 한 번씩은 느끼지 않을까. 2,30대까지는 그래도 아직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마흔쯤 되면 나이만 먹고 시간만 흐르기 시작한다. 막 절망까진 아니지만 지금까지 뭘 했을까. 나는 무엇이었나. 잠깐은 모두가 생각해보지 않나.

블로그 이사하면서 문득
일론 머스크도 아니고 인플루언서도 아니지만 우리가 어딘가에서 돈을 벌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매일 집을 나서기 위해, 오늘을 살기 위해 수많은 일을 살아냈다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냥 여기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불가능했다. 주말엔 새로 생긴 맛집에 가 보고 당시 시청률 좋던 드라마를 보고 흔한 연애와 흔한 데이트를 하고 감기에 걸리고 나았고 여행을 갔다. 그동안에 책으로만 읽던 명언들이 맘에 와닿고 불안한 뒤에 안심을 하고 작은 스트레스들을 해결하고 좀 더 사람 보는 눈을 키우고 인생을 생각하는 시선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작지만 그런 작은 드라마들을 촘촘히 엮어 여기까지 온 블로그를 다시 봐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나의 별 거 아닌 인생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별 거 아닌 인생을 앞으로 똑같이 살아도 괜찮을 거 같다는 확신 같은 게 들더라. 앞으로도 나에게 아주 작은 일들이 촘촘하게 생기는 것을 당연하고 기쁘게. 그냥 심각하게 고민한 건 아니고 예전 블로그를 보면서 와! 되게 사소한데 되게 재밌네? 이러면서 봤다는 이야기.

오늘도 사소하게 기타센주를 산책하며 그랬다.

와 되게 예쁜 햄버거 집이네!!

크… 아메리칸 레트로.
너무 예뻤다. 너무너무 예뻤다.
한 뉴저지쯤 온 거 같지 않아요?
아니에요?
스펀지 밥이 굽고 있을 거 같지 않아요?
아니에요?

햄버거도 맛있었지만 평소보다 감자튀김을 엄청 많이 먹었다. 얇은 감자튀김 너무 좋아해. 나가면서 감자튀김 진짜 맛있었다고 칭찬하니 그건…. 사입한 거라 그래서 수습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맞았다. 다음부턴 가게가 간판메뉴라고 자부하는 음식을 먼저 칭찬할 것을 배웠다. 이렇게 우리는 한 층 더 어른이 되어감미다.

미안함미다.

기타센주에 가면 가끔 구제 옷가게에 들른다. 시모기타자와 만큼은 아니지만 몇 군데 있다.

330엔에 빠알간 니트를 사 왔다.
옆에 리바이스 진청에 떡볶이 코트를 입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손때 탄 가죽 가방까지 금방 잡지에서 튀어나온 분 같았다. 저렇게 사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멋지게 늙고 싶다. 아니.. 저분 알고 보면 인플루언서인 거 아냐? ㅋㅋ

좀만 더 발목이 길었다면 좋았을 올해의 수면양말

2024년에도 사소한 이야기 이어집니다.
항상 좋은 기분을 나누어주셔서 고마워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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