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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에서 도쿄역으로 이어진 길은 정말 예쁘다. 파라솔과 벤치가 들어서는 주말이랑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는 밤이 특히 예쁘다. 그 길에 코코 샤넬 얼굴이 펄럭였다. 참았다가 하루의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직행했다. 

나는 사실 전시나 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적도 없고 볼 줄도 모르고 이렇다 저렇다 논할 지식도 없고 어떤 화가 좋아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황할 사람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우연히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아트를 좋아한 메텔 덕분에 한국과 일본의 전시도 몇 번 가 보고 예전에 무사비 미대 다니던 친구 덕분에 이런저런 현대 아트도 볼 기회가 있었고 일본인 친구인 메구상은 열렬한 아시아 전통 예술의 팬이자 뮤지컬 등 공연문화의 오덕이자 역사광이라 (그냥 종합 예술 센터) 나를 유명한 전시에 몇 번 데려가서 그 매력을 설명해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때 절친이던 이쿠미도 이런 걸 좋아해서 날 데리고 다녀줬다. 그러다 어쩌다 어깨너머 매력을 알았달까 내 나름의 재미를 찾았달까.

혼자 미술관에 온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지만 나는 오래된 건축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또 살다 보니 깨달아서 코코 샤넬 전을 오게 된 것도 있다. 여기 <미츠비시 1호관 미술관> 三菱一号館美術館 은 1894년 영국 건축가를 초대해서 영국 19세기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은행, 사무실 등등으로 쓰였다가 2010년에 미술관으로 오픈되었다.

미술관 안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기묘한 현대 아트나 심오한 클래식 아트나 역사적 유물들은 보아도 충격과 소오름 이런 감상은 오지 않지만 상업 미술, 디자인, 패션에 관련된 전시들은 그것들보다는 관심이 생긴다.

미술관 창
복도.. 어쩔 크.....
계단 크.....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후 이집트 미라 전이나 화석 전시 이런 것도 몇 번 가 봤는데 오...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 것이었다. 전시 하나 보고 나면 300페이지짜리 책을 한 권 읽어버린 것과 같은 개이득 느낌. 게다가 눈으로 직접 보니 간접체험 같지 않은 간접체험이 된다. 더욱이 영어 공부에 빠지고 나서 전시에 꼭 빠지지 않는 영어 설명을 번갈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단어가 어렵지만 설명문이라 문법이 쉽고 드라마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단어들이라 새롭고. 그런데 꼼꼼히 전시를 보고 있는 사이 하루랑 케군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닥치는 대로 보고 몇 개는 스킵하고 도도도도 발발발발 항상 내가 반도 안 보고 있을 때쯤 벌써 기프트 샵에 가 있는 것이다. 우이씨.

그래서 하루가 개학하면 꼭꼭 혼자 전시를 보러 가야지 했었다. 물론 코코샤넬이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도 설명에 쓰여 있는 그대로 그냥 이해할 뿐 그 이상의 해석을 할 재주는 못 된다. 그냥 그녀의 인생이 대단했고 작업한 많은 것들이 그녀다웠다는 것. 다 보고 나니 코코 샤넬 전기 한 권을 읽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일본어 설명 옆에 영어가 아니라 불어였다. 앜 
전시가 끝나고 심플한 병에 까만 글씨로 쓰인 샤넬 no5라는 라벨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 잠깐 얼만지 검색만 해봤다.

집에 가는 길에 유락초 마루이 지하에서 파는 베트남 요리를 한 접시 사 먹고

교통회관 지하를 어슬렁대다가 한국 슈퍼를 발견해서 깜놀했다.

아니 긴자...월세가 어마어마할 텐데?!

-언니.. 미숫가루 있어요? 

물어봤더니 유루무짜는 있는데요. 미수카루는 어푸써요...라고 한국말 다 알아듣고 잘하는 일본인이어서 또 깜놀했다. 화장을 한국 대학생처럼 하고 계셔서 이제 국적을 모르겠다. 케이 뷰티가 독하게 화장하던 일본 소녀들을 과즙상, 한 듯 안 한 듯 메이컵의 착한 댕댕이로 만들고 있다. 바람직해 바람직해 개인적으로 나는 너무 맘에 든다. 유기농이었나 비건이었나 정라면이랑 홍라면을 하나씩 사 와 봤다. 홍라면은 끓여먹었다. 몸에 좋다길래 맛을 기대 안 해서 그런가 엄청 맛있었다. 

그다음에는 우에노 미술관의 핀 율전을 다녀왔다. 

 

내가 오래된 건물도 좋아했지만 살다 보니 미드 센추리 모던 가구에 환장한다는 사실도 발견했기 때문이다. 

창시와 부흥을 일군 덴마크 가구 장인 '핀 율' 어딘가 한국 이름 같기도 해? 조선시대에 박핀율이란 양반이 있었을 거 같기도 해?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갖고 싶다는 욕망이 불 타오르다가 어떻게 그런 시대에 이런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었지 신기했다. 

진심으로 갖고 싶다!!!!! 격렬하게 생각한 가구가 이 작품이다. 쏘잉 캐비닛이라는데 와 이건 꿈의 화장대다. 먼저 뚜껑을 열면 저 넓은 면에 거울을 세워 두는 거다. 그리고 그 밑으로 아빠 다리를 하고 쑥 넣고 거울과 얼굴을 바짝 붙여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를 세심히 그리는 것이다. 

게다가 바퀴 달렸어!!!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이동도 할 수 있고 한쪽에 치워놓기도 쉽고

수납력 보래. 저 네모진 곳. 파우더랑 쉐도우들 넣으라고 맞춰진 거 보래. 제일 오른쪽 길쭉한 데는 매직기 넣으라고 있는 데고 윗 단을 치우면 깊은 곳에 기초화장품 넣으면 되겠고... 하아.. 전체적인 사이즈며 색감이며 철제 경첩이 경박하게 반짝이지 않은 것이 너무 딱이다. 

 

나는 의자에 앉거나 서서 화장을 못하고 항상 바닥에 앉아 자연광을 얼굴에 비추어야 안심하고 화장을 하는 버릇이 있다. 이걸 보는 순간 내가 만약 오더 메이드를 한다면 딱 저렇게 만들어야지 섬광이 스치는 순간이었다.

다 둘러보고 마지막 부스로 갔더니 

모든 의자에 직접 앉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오오.... 너무 좋은데 난 왜 혼자인갘

이런덴 서로 앉은 모습 찍어줘야 하는 전시였어... 아쉽다 아쉬워.

미술관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갔다. 여유롭게 미술 관람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온 할머니 할아버지로 북적였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양식부터 중식 일식까지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레스토랑이었다. 태블릿으로 주문하는 거라 아주 맘 편히 희한한 콤비네이션으로 

스파게티와 톤지루 (돼지고기 들어간 미소시루)를 시켰다. 

되게 맘에 드는 가구 매장에 갔는데 너무 비싸서 아무것도 못 사고 돌아가는 길이면 박탈감을 느꼈을 텐데 원래 안 파는 물건들이라 오히려 취향이 격앙되는 특이한 체감을 하고 매우 흡족히 집에 갔다. 내 눈에 예쁜 거 쩌는 거 잔뜩 보고 배 불러서 마음도 배도 두둑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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