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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군이랑 마지막으로 단 둘이 시부야에 왔었던 기억을 더듬어 봤다. 마지막이 언제더라.... 그래도 단편적인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맛집에 줄 섰던 기억, 옷 쇼핑, 늦게까지 헤어지기 싫어서 밍기적댔던 밤거리.

딱히 시부야가 아니면 안 될일은 단 한 개도 없었지만 젊으니까 우린 이 동네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왠지 또래끼리 있으면 손 잡고 커플이란 걸 드러내도 뽐내는 것처럼 안 보이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느꼈나보다.

아이와 함께 시부야를 왔을 때 어색했던 느낌도 기억난다. 모든 것이 위험천만해 보이는 경계태세의 우리와 아이를 보는 불편한 시선들과 아니,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있다고 지레짐작한 우리의 걱정. 이렇게 할 게없는 동네였던가 새삼 놀랐었다.

하루가 영어학원 소풍을 간 반나절. 둘이서 뭔가를 하자! 라는 말만 했는데 어른끼리 가는 게 나을 곳으로 자연스레 의기투합했다. 그 결과가 시부야.

새로 지은 시부야 스크럼블 스퀘어 맨 위층의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

맨 윗층은 너무 경쟁이 치열해서 보자마자 전의를 상실하고 아래층에서 찍었다. 서자마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는 케군. 같이 산 지 10년이 되면 이 정도 조련이 되는구나. 관종 부인은 매우 흡족했다. 그리고 역광의 사진을 보고 왜 아무도 여기서 안 찍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역광은 역광이라 좋지 않은가.

근데.. 난 그루랑 결혼했나?
큰 덩치, 사라진 목, 몸이 너무 커서 조막만해 보이는 얼굴. 심각한 거북목 위치. 이건 뭐 미니온즈에 나오는 전직 악당 ‘그루’가 가발 쓴 모습.

한 차례 더 오더해서 얻은 사진.
요고 괜찮죠?

쇼핑몰로 내려왔더니 ‘하치’의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시부야역을 지키는 시바견 동상의 주인공 '하치' (주인이 죽은 걸 모르고 하염없이 수년을 시부야 역에서 기다린 개입니다.) 얼마 전에 하치이야기 재현한 방송 보고 오열을… 한 직후라 아련하다. 아흗 따흗.


얘는 새끼 강아지일 때 고작 몇 달밖에 같이 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우에노 박사님을 (주인) 기다렸단다. 그리고 마지막엔 시부야 역 근처 다리에서 노화로 죽었는데 몇몇 설에 의하면 지금까지 자기를 보살펴 준 동네 사람들 집을 하나하나 돌며 마지막 인사를 했을 거라는 가설을 제시해서 내가 오열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작가들의 망상으로 갑자기 사후 세계에 하치랑 우에노 박사님이 막 만나 가지고 다리를 건너질 않나.. 오열...

히카리에 쪽으로 육교를 건넜다. 이쪽 시부야 풍경이 낯설다. 새로 생긴 게 참 많다. 육교를 건너면 보이는 건물 3층이었나? '돈테끼' 란 돼지고기 스테이크집이 있었다. TV에서 보고 너무 맛있어 보여서 케군이랑 긴 줄을 기다렸다 먹었었다. 정말 맛있었는데 폐업했네.. 최근까지 영업했는지 유리창에 가게 이름이 남아 있었다.

망측한 네온 사인들 사이를 걸었다. 마음만 앞선 나를 케군이 새로 생긴 공원까지 잘 데려다줬다.

맞아 맞아. 여기.
가 보고 싶었던 곳.
계단을 올라 쇼핑몰 건물을 통과해 도착한 곳.

더 이상 발 디딜 데가 없는 번잡한 시부야가 낸 명안이 아닐 수 없다.

루프탑에 만든 미야시타 파크.

오...이런 시부야라면 하루 데리고 한 번 오고 싶어 지네.

살짝 더위가 꺾인 시간이 되니 사람들 걸음도 살랑살랑 템포가 늦어지는 기분도 들고 우리도 하라주쿠 쪽으로 걸었다.

하라주쿠로 넘어가면 또 같이 하라주쿠에서 데이트했던 먼지 쌓인 기억들이 올라왔다. 아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가 딱히 의미 있는 일을 한 적은 없어. 하라주쿠를 걸었었다. 저 간판 앞에서도 걷고 저 건물 앞에서도 걸었다. 차를 마시고 가게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젊은 날의 우리 둘이 앳된 얼굴을 한 그 기억의 배경이 하라주쿠였던 것이 그냥 청량하고 설렌다.

예전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그 날이 떠오르는 것처럼 변한 듯 그대로인 거리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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