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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바다를 보며 스팸 오니기리를 먹고 있는 곰돌이

푹 자고 눈이 팍 터져서 6시 35분 무사히 투어 버스에 탑승했다. 셀프로 자른 청바지 길이가 너무 맘에 들지 뭐예요. 한 2분 남았다고 사진을 오만장 찍으면서 갔는데 (뒤의 봉고차) 투어 버스에 사람들이 그득히 앉아있었다. 아마 창 밖으로 우리가 지랄발랄 떨며 오는 걸 구경하고 있었겠지. 아이고 민망해라 ㅋㅋㅋ  우리 호텔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픽업장소라 늦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픽업당한(?) 호텔 사람들은 6시부터 이 차에 타고 있었을 것.

버스 안 분위기는 오묘했다. 노련해 보이지만 상당히 의욕 없는 일본 청년이 가이드로 왔고 검고 탄탄한 근육의 일본 아저씨 한 분이 일행과 조곤조곤 계속 대화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대부분이 불평이었다. 하지만 신랄하고 타당했다.
-하아.. 아침 6시부터 사람 불러놓고 호텔 뺑뺑이 돌고 투어는 말이야 이런 게 좀 그렇지.
이런 식이었는데 가이드도 지지 않고?
-앞으로 약 30분 간 이동하면서 간단한 설명과 왜 아침 일찍 여러분들을 모실 수밖에 없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리조나 메모리얼은 각국의 관광객 특히 미국 본토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장소이며 예약이 필요한데 가장 확실하게 입장할 수 있는 때가 아침 첫 출항이기 때문입니다.
기계적인 설명을 했다. 말투에 의욕은 없었다. 하와이에 부푼 꿈을 꾸고 왔는데 어쩌다 보니 인생 꼬인듯한 매듭 부분이 느껴진달까.

마지막 픽업장소 호텔에 도착했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차가 출발 못했다. 가이드가 호텔 앞에서 한 손님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신랄이 아저씨가 꼭 이럴 때 약속 시간 안 지키는 사람 있다며 내 마음의 소리를 발산해 주었다.  허겁지겁 타도 모자랄 판에 여유 터지는 발걸음으로 남자 한 명이 나왔다. 근데 정장을 자켓까지 입고 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와이에서? 투어 가는데? 이 아침에? 내 머리는 물음표로 터질 뻔했다. 기다린 보람 같은 게 느껴짐. 참… 재밌는 세상이야.

내 자리 앞에 이런 안내문을 발견했다.
‘팁은 투어 요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일본 문화에는 없는 습관이지만 팁의 유무가 가이드 당일 투어 내용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며 생활비가 됩니다. 보통 인당 10달러. 만족하셨다면 20달러를 받을 수 있다면 가이드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이렇게 다이렉트 한 표현 가득한 일본어 안내문 처음 보는 거 같다. 팁의 유무가 당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적응 안돼. 알려줘서 고맙기도 한데 어딘가 빡침도 느껴지네ㅎㅎㅎ 우린 세 명이니까.. 30불? 애는… 반값으로 해도 되려나.. 아 진짜 이 팁문화 계산 너무 힘드네. 그냥 투어값 더 낼 테니 가이드한테 충분한 월급을 주라 ;ㅂ; 얼마를 주지? 언제 주지? 뭐라면서 주지? 젊은 청년 손을 잡으며 주는 건가? 주머니에 끼워주는 건가? (범죄 같은데) 명함 주듯 깍듯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문제가 어렵다…

먼저 Pear Harbor visitor center에서 1차로 해산했다. 각자 스마트 폰으로 큐알을 찍고 배 타는 순서를 예약한다. 그리고 시간이 될 때까지 주변 박물관과 매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여자 화장실에 갔더니 정기적인 비명소리가 울려서 으스스했다.

얘가 혼자 으아아아아!! 외치며 비누를 토하고 있었다.

열심히 읽어봤지만 거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박물관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고 순서대로 배를 탔다. 분명히 배로 이동할 때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설명 들었는데 미국인은 촬칵촬칵 엄청 찍고 있었다. 근데 찍으면 안 된다고 일본 가이드가 그랬다. 찍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그랬다. 가는 배 오는 배에 모두가 양보하며 꽉꽉 끼어 앉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아리조나 기념관은 아련한 곡선이 돋보이는 새하얀 건물이었다. 바닥에 침몰된 아리조나 군함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세워져 있어서 배로만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창문의 개수와 디자인, 위치까지 모두 의미가 담긴 곳이었는데 90퍼센트 서양인들로 북적였다. 나는 솔직히 얕보고 있었다. 한국 역사에 비하면 미국은 이제 막 생겨난 나라 아닌가.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래 지금까지 500여 년. 우리나라는 조선만 600년인데 애국심이 있어봐짜.. 말이야. 유노?

어느 일요일 일본이 대대적인 기습 공격으로 하와이를 초토화시켰다. 아리조나 군함은 제일 먼저 격침당한 ‘시작의 배’였다. 빼꼼히 나온 군함 옆으로 여전히 기름이 흘러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앞으로 80년간 더 나올 거라고 한다.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벽면에서 거룩함이 최고조였다. 아메리카 국가가 들려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짧은 머리에 문신을 한 미국인이 굉장히 많았는데 모자나 소품들이 아마도 군인들인 거 같았다. 내가 전쟁에 대해 느끼는 애국심은 부모에게 느끼는 효심이랑 비슷해서 마음이 아픈데 미국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볼 수 있는 인간애와 동료애와 비슷하게 마음이 아팠던 건 아니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

아무것도 없었지만 상당히 강렬했단 아리조나 메모리얼이었다. 몇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편의 예술 작품이 경종을 때려버리는 효과.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서 있는 그 건물 바닥에 침몰된 채 몇십 년이 지나도 절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보여주는 기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이렇게 외국인과 후대에 어떻게 하면 참담했던 역사는 서글프게, 영광의 역사는 벅차게 전달할 수 있을지 좀 더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얹혀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번역해 놓은 전시물들보다 훨씬 그 정서가 잘 전달되어서 부러웠다.

멀리 미주리 전함이 보인다. 다음 코스는 저곳이다.

눈부실까 봐 100엔 샵에서 선글라스 사 왔다.
한 번 써 보고 바로 잃어버림 ㅋㅋㅋㅋㅋ
나도 눈부실까 봐 유니끌로에서 선글라스 사 갔었다.
한 번 쓴 게 다인데 바로 잃어버림 ;ㅂ;

다시 또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이번 버스는 다른 외국인들과 섞여 미주리 전함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이럴 거면 일본인 가이드는 왜 필요했지 아주 잠깐 생각했지만 여긴 군부대시설이라 조심해야 할 상황이 많았고 (예를 들면 가방에 물건 절대 안 됨. 소지품은 포켓에 넣을 수 있는 것만 가능. 가면 안 되는 길, 하면 안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음) 렌터카가 있더라도 접수부터 순서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미주리 전함에서는 일본어로 다른 가이드에게 토스되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엄청나게 유익했다!

미주리 전함으로 들어가는 길.
50년간 활약한 호호 할아버지 전함인데 은퇴했다가 다시 복귀하고 6.25에 걸프전까지 참전한 이력이 있다. 일본군과의 전쟁도 미주리가 승리로 이끌어 ’ 끝맺음의 배‘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배를 직접 본 것에 가장 의미가 컸던 이유는 미주리 전함 안에서 일본이 전쟁에 항복하고 패전에 인정했다는 서명을 한 역사적 장소였기 때문이다. 각 국의 대표들에 둘러싸여 서명한 증서를 볼 수 있다. 그곳에 나도 서 봤다. 이상한 희열이 있었다.

바로 여기다!

출처 위키피디아 : 항복문서를 작성 중인 당시 사진
설마 진짜는 아니고 복사본이겠지?

일본의 항복문서는 이렇게 생겼다.
제일 위에 일본 대표단의 사인이 있고 각 국의 대표가 사인을 해 나가는데 먼저, 미국, 중국, 영국, 소련, 호주까지 순조롭다가 캐나다 대표가 삐끗했다. 나라 이름 위에 사인을 해야 되는데 나라 이름 밑에 사인을 해 버렸다. 그런데 다음 프랑스도 그러려니 다음 줄에 사인을 해 버림. 그리고 네덜란드도 뉴질랜드도 그렇게 했다. 사실 한 칸 어색하긴 하지만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뭐 한 것. 나라 이름이 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 차이지 사인이랑 국가가 짝지어지면 된 거 아니냐는. 하지만 일본은 이런 형식에 어긋난 문서를 가지고 천황에게 돌아갈 수 없다 뻐댔다.
이 대목을 가이드한테 듣는데 혼자 속으로 뿜었다. 솔직히 이렇게 중대한 서류인데 이해가 간다. 엄청 중요한 서류지!!! 근데 일본사람들이 평소에 개코딱지같이 시답잖은 서류 칸도 잘못 썼다고 다시 쓰게 하고 수정시키고 종이 자원과 내 시간을 펑펑 낭비하던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어이터져 웃었다. 걍 쫌 넘어가라! 프랑스나 유럽처럼 쿨하겤ㅋㅋ 항복문서만큼 중요한 서류는 편 좀 들어주고 싶은데 너희들은 너무 전과가 화려해.
대표들과 매스컴이 모이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그 당시 시간이 진짜 없었는데 일본이 절대 이 서류는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모두 다시 모일 수는 없고 국가 이름에 줄을 한 줄씩 긋고 국가 이름을 수정하는 서류로 남게 되었다. 그 지저분한 서류를 들고 일본 대표는 얼마나 분했을까. 그런 꼼수로 위기를 넘긴 담당자 잘했다.

설명이 끝나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군함 안을 탐험 할 수 있었는데 없는 게 없어요. 너무 재밌습니다.

식당이 몇 군데나 있었고 전부 다 레트로 아메리칸 스타일. (꺅)

우연히 카미카제 (자살 파일럿) 공격을 해 오는 제로기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이 파일럿은 날개 부분을 군함에 충돌시켰을 뿐 큰 데미지를 못 입힌 채 죽었는데 당시 미주리 군함의 선장이 적군이지만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을 위해 배 안에서 장례식을 치러주었다고 한다. 배 안에서 모은 재료로 밤새도록 꼬매 일본 국기도 만들어 덮어줬다고. 당시 대원들은 적군인데 장례식이라니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더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뭐랄까.. 역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 느낌의 군인정신, 동료애? (뭔지 알겠죠?)가 느껴졌다.

역사에 남을 사진을 찍은 주인공은 당시 식당에서 밥을 먹던 대원인데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고. 취미를 열정적으로 하면 위업이 된다. 멋지다..

빵 만드는 방 따로 있음.

이 방은 제일 직급이 낮은가벼.

높은 분 방

하하 애플 문짝

영화 세트장 같다.

배 안의 우체국

나는 살아남은 병사로서 전쟁을 증오한다.

전쟁이 있는 한 나는 묻고 답해야 한다.
내가 죽을 가치가 있는가.
해석이 안돼서 사진 찍고 집에 와서 번역기 돌려보았다.  내가 짐작했던 말이랑 전혀 달라서 충격이었는데 (자신의 영어실력에 ㅋ) 소름 돋게 명언이었다. 그래… 정치인들이 싸우라고 해서 나가 싸우는 그 고귀한 생명들이 도대체 죽을 가치가 있는가.

알차게 꽉꽉 눌러 담은 하와이 둘째날 오전이었다.

아, 투어 버스에서 내릴 때 꾹꾹접은 달러를 젊은 가이드에게 전달했더니 지금껏 본 적없는 그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마지막은 하루가 찍은 디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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