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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심사는 쫄깃했다. 우리 앞 앞 줄에 서 있던 여행객이 37번 데스크에서 심사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입국 심사원이 불같이 화를 내며 언쟁이 일었다. 중국어를 쓰는 아시아 여행객이었다. 좀처럼 심사는 끝나지 않고 일행이 자꾸 안 나오자 상황을 보려고 기웃거리는 사람한테도 나가요!!!! 막 극대노까지 하는데 제발… 37번이 우리를 맡지 않게 해 주세요.. 부들부들 떨었다. 도대체 심사원한테 뭔 짓을 한 거야… 가뜩이나 긴장돼서 내가 얼마나 미국 입국 연습을 했다고요.

그리고 간발의 차로 우리는 38번에 불려 갔다. 우리 뒤의 사람들.. 37번으로 ;ㅁ; 사요나라… 38번 직원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국인, 일본인 부부에게 번갈아서 그 나라 말을 써 줬다. 나한테는 UmG 엄쥐~ (손가락 스캔~ ) ㅋㅋ너무 고급스킬이라 뭔 말인가 했다. 일본어로도 오야유뷔~ 해 주시더군 ㅎㅎ

쨍한 빛이 비치는 밖으로 나왔다.
아니!!!
아니!!!
여보짱!! 카메라 셔터소리가 안 나!!
손나 바카나! (그럴 리가!!)
진짜야!! 미국이야!! 여긴! 미국이야!!!
이 애플아 내가 미국온 거 어떻게 알았냐 촘 무섭다 우하하하하. 세상은 이런 것도 된다니 너무 신기한 거라. 지난 포스팅에 셔터 소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네 주저리주저리 한 나를 취소합니다. 셔터소리 안 들리는 거 너무 좋아요. 무음 무어플 무보정 사랑합니다 ㅋㅋ

한국 여행객이 애용하는 택시 회사는 노팁택시와 하나택시인데 일본 여행객은 찰리스 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네? 안 물어봤다구요?)

00사마~
우리 이름을 공손히 일본어로 불러주시는 기사님이 도착하셨다. 일본기사님이구나 싶었는데 (아직 영어 세 마디도 안 함) 한국 분이셨다. 영어는 못 쓰지만 이거 참 반갑구만 반가워요.

아주머니셨다. 너모너모 나는 호기심 천국이었다. 다행히 아주머니도 애기가 일본말도 하고 한국말도 하고? 어모어모 손님은 일본에 살고? 어모어모 하와이는 처음이고? 어모어모. 개의치 않고 궁금한 거 서로서로 파헤쳐보는 시간을 좋아하셨다.

아주머니는 괌으로 시집을 가셨는데 (남편의 국적은 불명) 이혼하고 아이 둘을 두고 혼자서 10여 년 전에 하와이로 혈혈단신 이주를 했다고 한다. 세상에- 이게 쉬운 일인가. 그것도 젊지 않은 나이에. 그리고 택시 일을 시작하셨는데 일하고 싶을 때 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자영업 스타일이라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저는 하와이가 너무 좋아요. 날씨가 최고예요. 이런 날씨가 없어요. 정말 날씨 때문이라도 여기서 살 이유가 충분해요. 기후에 대해 몇 번이고 말하셨는데 (처음엔 살짝 에이 날씨 때문에 산다뇨. 그건 좀 오버… 의심했다가) 곧 뼛속 깊은 납득을 했다. 날씨가 다 했고 하와이는 날씨가 가장 최고였고 날씨 때문에 우린 하와이에 꼭 다시 오고 싶어졌더랬다. 그리고 괌에 두고 온 아들 중 둘째가 장성해서 엄마가 사는 하와이에 왔단다. 바로 옆에서 가정을 꾸리고 왕래하며 살고 있다고. 사랑하는 가족까지 함께라니.

30분 남짓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그 짧은 시간에 16부작 해피엔딩 대서사를 들었다.

나는 나름의 리서치 후 쉐라톤 와이키키에 예약했는데
1. 렌터카 없이 하와이 비기너가 도보로 여행하기 위해 중심지에 위치한 호텔
2. 아이가 놀기 좋은 수영장
3. 수영장에서 바다로 이어짐
4. 하와이 호텔 대부분이 연식이 오래돼서 낡은 느낌이 있는데 (친구 정보) 새로 지은 트럼프 호텔은 엄청 비싸서 예약 못하겠고 쉐라톤 와이키키가 2021년에 전 객실을 리뉴얼해서이다.

아침 11시에 프런트에 도착했다. 50불 추가하면 얼리 체크인이 가능했다. 7천 엔인가.. 크.. 환율이 너무 비싸서 도려내는 아픔. 하지만 케군은 타격감 1도 없이 “당장 내고 우린 방으로 간다.” 의지를 밝혔다.  케군의 좋은 점은 우선순위가 항상 확실하다는 것이다. 돈을 헤프게 쓰지 않지만 돈 쓰는 기준이 확실해서 어차피 낼 돈에는 망설임이 없다. 개머찜.
케군한테 반해서 방으로 가는 동안 생각해 보니 내가 막힘없이 이 모든 걸 영어로 했네? 후.. 나도 쫌 머쪄따.

그리고 16층으로 배정받았다.
두근두근 우리 방 뷰 개봉박두.
나이 들수록 케군이 오션뷰 오션뷰 노래를 해서 뷰가 어떤지 매번 시험대에 올라간 기분.  

어딘지 익숙한 일본 호텔 사이즈로 큰 방은 아니지만 청소 상태도 좋고 있을 거 다 있었다.

아, 그래서 뷰는요.

왼쪽 낮은 산이 다이아몬드 헤드

바다 아니고 태평양!!! 이런 느낌!!
케군은 스게~ 야바이! 나름 소리 지르며 엄청나게 흡족해했다. 게다가 예상 밖의 다이아몬드 헤드까지 보였다.

방에서 바다 위에 헤엄치는 바다거북이 육안으로 자주 보였다. 말 다했쥬.

귀여운 수영장, 바다, 다이아몬드 헤드가 한눈에 들어와 3박자라며 이보다 더 좋은 뷰는 없을 거라고 케군은여행내내 되새김질했다. 내신점수 뷰로 따놔서 일단 안심입니다.

수영장으로 이어진 1층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언제 우리가 시차로 쓰러질지 모르니 점심도 먹고 물이랑 이것저것 사놔야지.

쉐라톤 와이키키 바로 앞에 Royal Hawaiian Center라는 큰 쇼핑몰이 있었다. 이 쇼핑몰을 부엌처럼 들락거렸다. 너무 세련되고 깨끗해서 새로 생긴 줄 알았는데 2020년 이후에 대대적으로 리뉴얼 한 곳이라고.

2층은 뻥 뚫린 스타일의 푸드코트가 있다.

하와이 새들은 불결해 보이지 않았다.
이 상쾌한 여름이 너무나 신박하다. 한국의 가을 공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 솔직히 가을에 한국 가 본 게 10년 전이라 가물가물하다)  사우나 속을 걷는 듯한 도쿄에서 와서인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첫 끼니로 포케를 시켰다.
Can I get a 어쩌구 저쩌구를 시전해봤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제 말을 알아들으시던지요. 나는 이제 입에 짝짝 붙어서 ‘캐나이 게러 어쩌고저쩌고’를 숨 쉬듯 말했다. 말하믄서 내발음이 너무 쩌는 거야. 지혼자. 그래서 또 하고 또 하고 혼자 좋아하고 캐나이 게러어쩌구저쩌구가 나는 너무 좋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참치랑 연어 넣은 포케를 받아 들고 오는데 ’ 00을 해 줄까요? ‘ 하더라고? Could you repeat the word?  다시 말해주세요 했더니 플라스틱 뚜껑을 들고 오셨다. What’s it called in English? 했더니 스윗하게 또박또박 Lid라고 발음해 주셨다. 나는 영어로 뚜껑을 획득했다. 이건 평생 잊지 못할 하와이 첫날 포케 집에서 배운 단어가 되었다.

마일드한 회덮밥 느낌이다. 새콤한 초절임이랑 매콤한 소스랑 마요느낌 한가득. (둠칫 둠칫 둠둠칫 위장이 춤을 춘다) 여행 중 나는 두 번이나 사 먹었다.

케군이 고른 쉬림프를 시키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필리핀 점원이랑 한참 수다를 떨었다. 한국드라마 좋아한다고. 온라인 영어 수업의 대부분을 필리핀 튜터와 해서인지 자연스러웠다. 필리핀 사람들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새우랑 마늘인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우린 의외로 이 집 햄버거에 감동을 받았다.

버터향이 느껴지는 번에 소스도 맛있고 야채도 신선하고. 와구와구와구. 다른 데서 먹은 햄버거는 기대 이하였다. 미국 햄버거가 맛있는 것보다 이 집 햄버거가 좋았던 거 같음.

이 기후를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소프트한 바람. 후덥지 않은 공기.
이렇게 쨍한데 벌레도 없고 습기도 없고 냄새도 없어 하와이 분위기를 만든 어느 스튜디오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건 영화 소품인가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면서 작은 것까지 아기자기 알록달록 예뻤다.

쉐라톤 와이키키 호텔에는 호놀룰루 커피가 두 군데 있었다. 너무 내 입맛이었던 그 집 카페라테.

1층에 편의점.  
하루의 오니기리를 상비해 둠.

사이좋게 사케와 막걸리 진로가 나란히 나란히

방에 와서 하루는 짧고 깊은 잠에 들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나는!! 피곤은커녕 힘이 펄펄 넘친다. 지난번 싱가포르 7시간 비행하고 와서도 이랬던 거 같은데. 여행 체질인가 봐. 아드레날린이 넘치고 있다!! 퐈이아!

중고마켓에서 줍줍 한 수영복을 가져왔다.

2년째 45킬로대 유지 중 자 여러분들도 렛츠두잇 내가 도와줄게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하루 긴팔 수영복도 미리 아마존에서 사놨는데 너무 미리 사놔서 몸이 커졌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ㅎㅎ 성격이 너무 JJJ한 나머지 애 몸이 커져버리는 걸 간과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슬아슬 딱 맞았다. 수영복 도착했을 땐 좀 여유 있었는데… 가끔 미리 준비하고 손해 보는 경우가 너무 어이없다.

물놀이장에서 진짜 귀여운 하루 사진 다음 포스팅에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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