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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고 산만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철저한 이 캐릭터 너무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ㅋㅋ 귀찮을 만도 한데 저 모든 장비를 가지고 항상 물에 들어갔다.  

첫날은 시차로 나가떨어질 줄 알았던 우리 가족 의외로 분발해서 바다로 나갔다. 

나는 이제 좀 꼬질해도 돌려 입고 빨아 입고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다니기로 했는데 많은 경험 끝에 우리 세 식구 짐이 92리터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가는 경지에 올랐지만 그중에 물놀이 준비물만은 단단히 챙겨갔었다. 캐리어의 반이 튜브, 아쿠아슈즈, 수영복 2벌씩으로 가득했던 것.

그런데 결국 사진의 보트형 튜브는 거의 안 놀았고 수영복도 단 한벌씩으로 매일매일 입을 수 있었다. 하와이의 쾌적한 날씨가 하룻밤이면 수영복을 바짝 말려주었기 때문이다. 다음엔 더 가볍게 여행 가도 되겠다.

하루는 이미 지난 모든 바다들을 다 잊고 또 바다 초심자가 되서 벌벌 떨며 들어갔다.  (오키나와도 괌도 기억이 안 난대.. 돈 아까버라 ㅋㅋㅋ)

호놀룰루 바다는 생각만큼 깨끗하진 않았다. 우윳빛… 때깔이랄까? 그래도 호놀룰루 비치의 지내는 내내 날이 좋아 너무 재밌었다. 파도에 예능감이 있어... 적당한 녀석이 들숨 날숨으로 오는데 애들이 하찮게 모래사장까지 떠밀려 가는 걸 보고만 있어도 너무 웃겨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녀석들을 물에서 건져 저녁밥 사러 나왔다. 

영화 소품인가... 다 왜이렇게 뻥 같지? 

그림 같아. 

(나무는 진짠지 한 번씩 만져 봄)

아까 왔던 로얄 하와이안 센터에는 3층에도 또 다른 푸드코트가 있었다. 

2층보다 여기 분위기가 더 힙했다. 둠칫 둠칫. 하지만 저녁밥은 호텔로 싸 갈 예정입니다.

나는 이탈리안 피자를 골랐다. 

라 봄바 피자. 

나의 어중띈 영어와 이탈리안 주인분의 완벽하지 않은 영어가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 대충 통했다. 

샐러드랑 티라미수도 끼워주시는 세트였다. 

하루는 내일 아침밥 스팸 오니기리도 챙기고 

(일하는 사람 다 일본인)

저녁밥으로는 케군이랑 나란히 무슨 규동 덮밥 같은 걸 주문했다. 역시 오너는 일본인... 뭐지!! 여기 푸드코트는 그냥 반 넘게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나는 한국인인데.. 일본말 모르는 척 새침 떼도 될 것을 ご注文伺います 하니까 몸땡이가 자동으로 すみません、これ、結構辛いですか?일본말을 하고 있었다.  쯪쯪.. 

가게에서 준 봉투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손으로 손잡이를 찾다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팍에 안았다. 아 이래서 외국 영화 주인공들이 그렇게 종이 백을 안고 다녔구나. 넘어지면 막 쏟고 앞이 안 보여서 허둥대고 전화오면 한 손으로 봉투를 안고 전화받느라 엉거주춤하는 그런 장면들. 외국 엄마들은 애도 한쪽으로만 안던데 이 종이봉투 한 손으로 들고 다니다 얻은 스킬일까. 

캐리어 올리는 받침대를 베란다에 세팅해 오션뷰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방에 냄새도 안 남아 좋다)

이 집 야키니꾸 도시락 꽤 괜찮았다. 김치까지 들어있었는데 이 김치가 일본에서 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보다 훨씬 맛있었다. 물론 쌀밥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찰지고 윤기나는 밥은 집에 가면 많이 먹으니까. 

훗 그래서 난 외국에서 쌀밥 따위 안 시키지. 그런 퍼석한 쌀밥을 돈 주고 먹을 수 없다. 내가 고른 라 봄바 피자는 나의 맞춤 메뉴였다. 인도 난처럼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구운 듯한 도우가 쫀득했고 그 위에 생햄, 루꼴라! (나는 이렇게 향이 강한 야채가 너무 좋다) 그리고 구름처럼 포실한 리코타 치즈가 아낌없이 올라가 있고 발사믹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이렇게 고퀄 피자와 티라미수 (대따 큼) 깍둑썰기 된 야채샐러드까지 26달러. 약 4천엔 돈이지만 도쿄에서도 찐 이탈리안이 제대로 만들어 준 피자에 돌체까지 먹으면 이 정도는 나오니까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다른 밥 값은 다 피눈물을 흘리며 돈을 냈ㅋㅋ)

특히 얘네들이 먹은 규동들. 

두 개에 36불을 냈다. 5천엔이 넘는 값. 일본 규동이 한 그릇에 600엔이니까 (윤기 좔좔 밥) 여덟 그릇은 먹을 수 있는 돈인 것이다. 진짜 피 눈물이 흐른다 ㅋㅋㅋ 하지만 너무 행복하게 먹으니 냅둡니다. 이국적인 곳에서 익숙한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고 한다. (어. 그.래. 그.렇.구.나. 의무적 맞장구치고 넘어가기)

 

그건 그렇고 밥 먹으면서 본 그 날의 노을을 우리는 두고두고 추억했다. 언제 훑고 지나갔는지 모르는 비 뒤로 무지개까지 둥실 떠서 정말 꿈만 같았다. 내일 일어나면 내 방 천장이 보일 것만 같았다. 스스로 싸대기라도 때려보자.

저녁 산책을 나왔다. 살갗에 하와이 공기가 닿는 자체가 휴양이라. 

-엄마, 밤에 저런 불을 피우나 봐. 전기가 아니라 진짜 불이네?

무슨 시스템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담당자를 볼 수 있었다. 하나 하나 진짜 횃불같이 불을 옮겨 붙이고 계시더라고.  

하루 팔에 파란색 팔찌가 룸 키였는데 우리가 체크인할 때 받은 두 개 중 한 개가 고장 나있었다. 케군은 이제 최고 영어 능력짜인 나에게 바꿔달라고 주문. 우리 가족 안에서만 보면 2년 만에 내 스킬 엄청나게 업한 느낌이다. ㅋㅋ 아무튼 좋아! 우리에게 생긴 예상 밖의 시련을 영어로 극복한다! 프런트로 다가갔는데 미리 영작해보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It doesn't work. 

이 말이 퐁! 하고 떠올랐다. 그리고 통했다.

어 나 소름끼쳤잖아. 

아하하하하하 기분이 좋은 밤입니다.

뭘 도데체 기다리나 봤더니 일본 빙수였다. 얼음 갈아서 색소 뿌린 그 없어 보이는 빙수. 호놀룰루 비치에 팥빙수 사업 시급합니다. 제주빙수라는 한국식 빙수 집도 봤는데 자리가 안 좋다 자리가! (알라모아나 쇼핑몰 안에 있음) 저렇게 길거리 다니면서 사 먹는 부스 스타일로... 아 .. 내가 차릴까. 진심 고민했다는. 내가 얼마나 일본 빙수를 어이없어하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그걸 먹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줄 선 걸 보니까 많이 힘들더라.

하와이 신호등은 여러개였다. 빨간 등이 동시에 대여섯 개가 들어왔다. 내일은 아침 6시 30분 투어버스 타야되는데 나는 전혀 피곤하지가 않네.. 걱정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잠들었다. 웃기게도 이 날부터 쭉 단잠을 잤다. 일본에 와서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이 계속돼서 하루가 개학하는데 최적의 사이클이 만들어졌다. 시차 적응에 고생하긴커녕 수면 습관 재정비하고 와서 황당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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