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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자

방심했다 발음 교정

Dong히 2024. 3. 1. 11:31

하: 엄마 오늘 학교에서 윷놀이했어.
학교에서 돌아온 하루가 느닷없이 말했다.
뭐라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본 초등학교에서 다 같이 한국의 전통 놀이를 했다고??
나: 진짜야? 그… 그걸 어떻게 알고 했어???
하: 원래…. 다른 시간인데 선생님이 하자고 그래서 다 같이 나가서 했어. 운동장에서.
나: 세상에.. 그걸 어떻게 했지? 선생님은 어떻게 알았대?

케이 컬처 위상을 느껴야 하는 대목인가. 아니면 다양한 나라의 전통놀이 경험해 보는 건가? 윷을 어디서 났지? 와!! 진짜 신기하네!!!
별 상상이 다 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것이다. 나는 어벙벙하기도 했지만 너무 기뻐서 서랍 안의 잊혀져 있던 윷놀이를 꺼내왔다.
나: 이거 봐. 우리 집에도 있어!!! 엄마가 하루 다섯 살 땐가? 인터넷에서 샀거든.
근데 윷놀이 세트를 본 하루 표정이 이상하다?

하: 이.. 이게 뭐야?
나: 윷놀이했다며 학교에서.
하: 웅! 웅노리해따고.
나: 눙? 눈? 눈놀이 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진귀하게도 도쿄에 눈이 쌓였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평생 눈 별로 본 적 없는 도쿄 똥강아지들을 운동장에 풀어놔줬다는 이야기. ㅋㅋㅋㅋㅋㅋ

니은 발음이 뭉개져서 못 알아들었다. 단어를 늘려 줄 생각을 했지 발음을 방심했네.. 지금까지 어리니까 당연히 애기발음이니까 라고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도 하고 매우 애기 발음이 귀여워서 방치해땈ㅋㅋㅋㅋ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또 한 가지 오해를 부른 이유는 일본은 모든 상황이나 상태를 명사로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어 가르칠 때도 보면 학생들이 일본어로 딱 축약된 명사들을 한국어에서 명사 형태로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待ち合わせ 마치아와세 라는 말은 한국어로 딱히 명사가 없다. 이건 친구를 기다리는 일, 사람을 만나기로 한 일, 약속이 있어서 나와서 기다리는 일, 미팅 때문에 만나기로 한 상황 등등으로 풀어 말해야 한다.

言い直し 이이나오시. 한국말로 하자면 틀린 말을 다시 고치기, 다른 표현으로 바꿔 말하기, 한번 말했던 것을 정정하기, 가장 짧게는 고쳐 말하기? 바꿔 말하기? 그때그때 문맥에 따라 풀어 말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동사를 합쳐서 복합어로 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음)

그래서 일본 학생들이 0000(명사) 이거 한국말로 뭐라고 해요? 질문하면 그건… 그냥 딱히 정해진 건 없고 그 상황을 풀어 말해야 돼요.라는 대답을 할 때가 진짜 많다.

이런 게 수도 없이 있다. 하루가 그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雪遊び 유키아소비 였을 것이다. 우린 뭐라고 하나? 눈싸움? 눈이 와서 밖에 나가서 놀았다? 한국에서도 눈 놀이라고 하나??? 눈 놀이라고 하면 뭔가 더 정형화된 룰이 있는 놀이가 있어야 되는 상황 같다.

아무튼 그랬다ㅋㅋㅋ
그런데 9년간 동거동락하며 일거수일투족 나에 대해 관찰하는 하루가 자기가 모르는 물건을 꺼내는 엄마를 보고 싸늘한 얼굴과 낮은 톤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 엄마….. 그거 왜 하루 몰래 가지고 있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토커냐고
나: 뭘 몰래 가지고 있어 ㅋㅋ 다섯 살 때 산 건데 그땐 하루가 너무 어려서 결국 이거 못했어. 룰이 너무 어렵다고 징징대서 그냥 어디 넣어둔 거지.
하루는 다섯 살 일은 기억을 못 했다. 근데 윷놀이에 엄청 관심을 보이길래 이때다 하고 룰을 가르쳐줬다. 도개걸윷모 발음 정확히 신경 써서 가르쳐줬다.

아.. 문제는 바닥에 잔뜩 담요를 깔아도 윷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쩌렁쩌렁했다. (우리 집은 1층이 아니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모아 목욕탕에서 윷판을 벌였다.
욕조 물 안에 던지자 윷들이 동동 떴다. 다행히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랜덤으로 물에 떴다. (욕조 물이 보리차 색인 이유는 오렌지 향 입욕제 때문ㅎㅎ)

윷놀이는 세상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끝내주는 보드게임이었다.

개와 걸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도입부는 돌림노래처럼 먹고 먹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하루 시선) 어부바해서 자기 팀 들쳐업고 쫙쫙 진도 나가는 기술이며 모! 모! 윷! 윷! 개! 연속으로 모랑 윷이 계속 나올 때면 온 우주가 자기를 돕는듯한 짜릿함이 온몸에 번져 최고의 클라이맥스가 아닐 수 없다. 하루는 하루 만에 윷놀이에 중독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똥강아지들 풀어주게 만든 도쿄의 설경

일본은 염화칼슘이 상비되어 있지 않아
미끄러워 죽을 뻔했다.
신발 잘못 신고 나와 목숨 건 외출

야야 그거 방수 장갑도 아닌데….

우리 집 똥강아지는 흠뻑 젖은 장갑 때문에 거의 울면서 집에 왔다. 눈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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