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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올여름 휴가는 홋카이도! 북해도! 키타구니! (북쪽 나라! ) 8월 초 케군이 코로나에 걸려서 출발 직전까지 이런 이런 서스펜스가 따로 없었지만 우리 가족이 줄줄이 소시지로 옮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다 함께 가슴을 쓸어내려보아요) 두 달 전부터 예약한 홋카이도 왕복 비행기는 코로나가 종결되는 듯한 분위기에 세븐일레븐 커피 팔리는 속도로 팔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설마 뭔 일이 있겠어 기분도 고조됐고 ‘변경 불가’ 티켓과 ‘변경 가’ 티켓 가격차이가 천지차이라 우리 손에 있는 건 <못 타면 그냥 이 돈은 쓰레기통 행> 티켓이었다. 심장이 쫄깃해찌. 우리가 여행을 갈 수 있게 된 건 하늘이 도왔다는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아직 공항에서 짐 부치고 있는 상황인데 이미 뿌듯함

하네다 공항에서 간단히 밥을 먹었다.

그날 게이트 앞에서 재밌는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 비행기는 10시쯤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오버부킹이 되었는지 1시경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변경해 줄 수 있는 3명을 모집하고 있었다. 협력하는 분께 만 엔 돈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십만 원과 3시간을 맞바꾸는 일에 사람들은 의외로 움직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여기저기 공항을 쑤시며 돌아다니고 있을 우리 비행기 탑승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돈 드립니다 뱅기 바꾸실 분” 을 어필했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촉박해졌다. 1만 엔이 2만 엔으로 뛰었다. 보드에 <협력금 2만 엔>으로 표기가 바뀐 후 직원들 목소리 톤은 그대로였지만 일시에 주변 공기가 싹 바뀌었다. 모두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로 진지하게 고려하는 얼굴들을 했다. 트렁크를 끌고 혼자 온 여성 승객이 3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수속을 하러 갔다. 그녀는 판단부터 행동까지 놀랍도록 재빨랐다. 뒤이어 3인 가족이 물어봤고 남은 자리는 2개뿐이라는 설명을 듣고 돌아섰다. 멋쩍어하는 가족들을 보느라 누가 나머지 자리를 꿰찼는지 놓쳤다. 그 직후 바로 보드가 사라지고 협력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는 인사가 나왔다. 3시간은 약 이십만 원의 가치가 있었나 보다. 꿀잼이었다.

홋카이도는 정말 큰 섬이다. 거의 일본 본토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이고 한국의 (물론 남한만) 80퍼센트 정도 크기다.(전국에서 강원도만 뺀 크기?) 그래서 갈 곳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곳.

하루가 태어나기 전에 케군이랑 제일 큰 시내인 삿포로는 다녀왔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곳이지만 미련 없이 삿포로를 제외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하코다테 공항으로 들어가
하코다테 - 노보리베츠 - 후라노- 비에이 -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하네다로 나오는 루트를 짜 봤다. 너무 광대한 지역이라 이렇게도 놀 수 있고 저렇게도 즐길 수 있어 여행 스케줄 짜는 내내 너무 재밌었다. 물론 렌터카는 필수이고 자동차를 빌렸던 곳에 다시 반납할 수 없는 여행이기 때문에 <노리스떼> (타고 버리기) 다른 지점에 갖다 주는 플랜 이어야 해서 자동차 렌트비만 50만 원이 들었지만 말이다. ;ㅁ; 여러모로 스케일이 컸던 로컬 여행. (이 돈이면 해외 갔다는 생각이 자꾸 들게 만들지만 절대 입 밖에 내지 말아요 우리)

렌타카 수속 기다리는 중
편의점 구경

옥수수와 멜론이 이 동네의 주연배우

관광지 둘러보고 가려던 곳이었는데 배고파서 순서를 바꿨다. 여러분은 <럭키 피에로>를 아시나요.

하코다테 최다 햄버거집. 일본에 버스 정류장 수만큼 있는 맥도널드를 하코다테에선 찾아보기 힘들게 만든 체인점이다. 하코다테에선 맥도널드를 왜 먹어? 럭키 피에로가 있는데?라는 존재감.

인테리어가 정신분열증 스타일로 예술이다. 모든 매장이 이런 느낌이란다.

환청 들려올 거 같은 이 느낌. 너무 멋져.
살짝 주눅 든 얼굴을 연출하며 주문대로 갑니다. 그러면 여행자인 걸 알고 도와줄 것 같거든요. 메뉴판은 얼마나 정신 쏙 빼놓게 생겼게요.

햄버거…. 밑에 카레

가만가만… 함박스테이크, 야키소바, 돈부리, 피자.. 도시락도 나온다. 햄버거 집이라며.. 배고픈 우리는 더욱 혼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래도 무사히 친절한 직원 아주머니 덕분에 시켰다. 여기에선 잘 의식을 못했는데 여행이 무르익어 갈수록 느낀 게 있다. 홋카이도 사람들의 친절함은 엄청나게 상향평준화되어있었다. 긴 여행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하나같이 어찌나 친절하시던지.

우리 자리가 특별히 정신없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자리가 저렇습니다. 독특하다.

케군은 차이니즈 치킨 벤토

나는 차이니즈 치킨 햄버거
이 차이니즈 치킨이 시그니처 재료이고 케첩, 간장의 새콤 달콤한 닭강정 느낌이었다. 닭강정의 매콤함과 바삭함은 없지만 일반 카라아게 보단 맛있었다.

도쿄에도 왔으면 좋겠다. 정신없는 행운의 광대 녀석.

렌터카 가게부터 정감 있는 사투리가 들려왔다.
오사카 사투리는 현대 드라마 보는 느낌인데 북해도 사투리는 왠지 흑백 영화 보는 느낌이었다. 둘 다 현실감이 없지만 오사카는 살았던 곳이라 그나마 친근해서? 북해도 사투리는 어미가 늘어지는 말투 때문이어서 그런가 너무 친절하게 들린다. 친절하기 쉬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나도 서울 말투의 그랬어? 어쨌어? 끝을 올리는 습관이 없었다면 더 재수 없어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거 같단 생각도 했다. 그래서 영상보다 블로그가 더 좋다. 서울 살다 도쿄에 온 내 말투는 평생 좀 재수가 없어서 마음에 안 든다.

첫 관광지는 <고료카쿠> 五稜郭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한 성곽 유적지이다.
하코다테는 홋카이도 섬 중에서도 고래 꼬리처럼 달랑달랑 한 끝에 위치하기 때문에 1853년 미국의 페리가 도착. 일본에서도 세 번째로 일찍 개항을 하게 된다. 그 뒤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왔고 이 ‘개항’이라는 부분이 하코다테의 무드를 만드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멀리서 봐야 되는 곳. 위로 올라갑시다.
불이 꺼지면 그림이 나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렇게 전망대 위로 올라가면 정확하게 별 모양을 하고 있는 성곽의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별 모양은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건설기법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유일하게 유럽식으로 성곽을 지은 곳이 여기다.

아스테르담 미술관 자료

아래는 네덜란드의 건축물. 이렇게 일본이지만 일본 같지 않은 하코다테.

한마디로 레트로 하고 서구적인 일본이 하코다테의 매력이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케군이 위의 부름을 받고 가려고 해서 빵 터짐.

하루는 이번에도 일회용 카메라로 기록할 거라고 그랬는데 도쿄에서 준비하는 걸 잊어버렸다. 오 여기 매점에 팔고 있어! 인터넷보다 삼.. 백 엔 비쌌지만 기쁘게 손에 쥐어 주었다.

별 가운데에 있던 본부??

고료카쿠를 관광하기 전에 주차장 찾기 너무 어려웠었다. 화살표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가보니 아저씨가 아니라고 봉을 흔들고. 근데 그걸 케군 혼자 낑낑대게 하지 않고 나도 같은 마음으로 “여보짱 내가 찾아볼게. 여기를 좌회전하면 공짜 주차장 있대. “ 운전하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며 같이 찾았다. 다시 한번 운전 배우길 잘했다 생각했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보조석에서 멍 때리다 내릴 때 다 되면 파우더 꺼내서 얼굴 팡팡 두드리고 있던 내 지난날들을 (죠패고싶게) 후회된다. (ㅎㅎㅎ 이래도 됩니다 케군이 안쓰러워서 혼자 생각한 거예요)

다음 목적지는 나의 바람으로 하코다테 지역 교류 마을 센터 (구글에 복붙 하세요 : 函館市地域交流まちづくりセンター )에 왔다. 우리가 이 마을 행정처리할 일도 없는데 관광객이 가도 괜찮은 거냐고 케군은 걱정 걱정.
-혼또니... 다이죠부...? (진짜 괜찮아?)
-혼또니.. 히토가 쿠루노? (진짜 사람이 오는데야?)

지금은 지역 사무실이지만 예전엔 백화점이었는데 건물이 예뻐서 간 건 아니고

건물도 많이 예쁨

바로 북해도 가장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체험해 볼 수 있어서이다. 가이드 북에도 나와있고 인터넷에도 잘 안내되어있는데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어서 나도 살짝 주춤했다. 하지만 1층 안내 데스크에 앉아 계시는 아주머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그런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환한 미소로 반겨주시며 "엘리베이터...."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어두운 방 안에 불이 켜지는 듯 "엘리베이터! 잘 오셨습니다!" 명랑한 목소리를 내셨다. (건물 오래돼서 쩌렁쩌렁 ㅋ)

생각지 못한 텐션.
"옛날 엘리베이터 타고 싶으세요!?" (레크리에이션 강사 텐션임)
"예!!!"
"아드님도 타고 싶으세요?!" (뒤에 하루를 보며)
"하이!!"
"저를 따라오세요~!"
"예!!"
오... 한방에 씐나. 이런 거 싫어하지 않아요.

포스 넘치는 문 앞에 서니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좋았다. 보자마자 셔터를 누르니까 직원분께서 불 켜면 더 예뻐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하며

영화 속 장면 같은 엘리베이터로 바꿔주셨다. 와우...

전부 수동이라는 설명을 해 주셨다. 레버를 U로 돌리면 올라가고 D로 돌리면 내려간다.

알몸인 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2,3,4,5 숫자가 쓰여있는 벽이 보인다. 4층과 5층 사이에 수동으로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문이 열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친절한 직원분은 마스크 벗고 다 서보라며

이렇게 예쁜 가족사진도 남겨 주셨다.

1층부터 5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가고 끝나버린 체험이지만 기억과 감정이 진짜 오래도록 남았던 시간. 마지막까지 기념 카드도 주시고 박수받고 큰 환영을 받으며 나가는 기분이 들게 해 주셨다. (이 모든 게 무료)

나와서 돌 길이 깔려있는 언덕들과

가이드 북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와 연결된 이국적인 언덕을 만끽했다.

하코다테의 소화전은 미국 스타일로 노란색이었다. (원래 일본은 빨간색)

유명한 하리스토스 정교회를 보러 갔는데 보수 공사 중 흑흑흑

이런 느낌.

개항 후 수많은 외국인이 살게 된 하코다테 시내는 그리 넓지 않아서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일본인과 외국인들은 자연스레 엉겨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옆에 신사가 있고 사람들은 서양인의 기술을 공짜로 구경하고 재빨리 익힐 수도 있었다고.

붙어!! 붙어!!!!

택시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도 많았다.

자, 이제 언덕을 내려서 밥을 먹으러 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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