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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의 첫 시작은 작년에 함께 본 한 만화부터였다.

<히토리 타비 이치넨세이> 직역하면 ‘나 홀로 여행 1학년생’ 이란 제목이다. 하루가 빌려달라며 도서관에서 골라 왔다. 본인이 1학년이니 진짜 초1이 주인공인 줄 알고 재밌어 보였던 것이다.

한국에도 <나 홀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림이 몽실몽실해서 너무너무 추천하는 책.

혼자 여행 가는 일이 처음인 주인공이 여행 홀로서기하는 과정이 위트 있고 어찌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지 신이 된 기분으로 (전능하진 않고 보고만 있어야 하니 무능함이 느껴지지만)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함께 여행하는 착각에 빠진다.
혼자 간 가마쿠라 편이었던가? 밥 집에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결국 편의점 음식을 싸 들고 호텔에서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엥?? 그게 용기가 안 난다고? 엄마는 좀 이해가 안 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쌩 혼자라면 쭈뼛할 거 같기도)
-하루도! 혼자 밥 먹을 수 있을 거 같애!! 엄마 우리도 후타리 타비 (둘이 여행) 해 볼까?
-진짜?
-우리도 한번 해 보자.

만화가 너무 귀여워서 늘 익사이팅하지 않아도 간간히 느끼는 여행 중의 외로움, 예상 밖의 곤란함, 생각보다 지루한 일정도 다 여행의 묘미로 다가왔다. 더웠던 날, 배고팠던 날, 이상한 사람 만난 날… 여과 없이 그려져 있다. 어린 하루에게도 그것이 전달되었는지 좀 힘들고 귀찮은 일도 포함해서 ‘여행’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사실 작년에 둘이 ‘치치부’라는 지역의 여행을 예약했다가 너무 코로나 감염자 수가 많아서 결국 취소했었다. (가려고 했던 시설들이 전부 영업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고 <나 홀로 여행 2>까지 보면서 꿈만 키워오다가 우리는 드디어 올해 가마쿠라 여행을 이루게 된다.

우리 집 최고 걱정쟁이 케군을 설득하는 게 가장 역경이었다. 모든 재난과 사고를 열거하며 시져 시져-를 시연했지만 나에겐 전략이 있었다.
-여보짱, 하루는 여보짱이랑 똑 닮았으면서 왜 여보짱하고는 다르게 낯선 사람들이랑 대화를 할 수 있는지 알아? 이자카야에서 알아서 음식 시키고 항상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어른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잖아.

시어머니에게 케군이 얼마나 낯을 가리는 아이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유전인지 잘 모르겠지만 케군의 남동생도 극도의 낯가림을 했고 그 부인도 (동서) 만만치 않는 낯가림 타입이다. 그래서 남동생 부부 사이에 태어난 조카는 슈퍼 낯가림 중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번도 선생님과 대화를 하지 않아 (숙제 가지고 왔냐는 yes/no 질문에 고갯짓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심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다. (친구들하고는 말한다고 하니 선택적 함묵증이랑은 조금 다른 상황인 거 같음)

-여보야, 저번에 고텐바 다녀왔을 때 거기 휴게소에서 밥 먹었잖아. 그때 계산하면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고 인사했더니 계산하던 아주머니가 아이고!! 이렇게 똑똑할 수가 너 몇 살이니? 어쩜 그렇게 말을 해주니. 우리 손자는 그런 말을 안 해서 걱정이다. 이런 대화 한 거 기억나지? (한국에선 아이 데리고 밖에 나가면 어른한테 인사해야지가 단골 멘트고 안 하면 고개를 부모가 접어서라도 시켜야 하고 상대 어른도 인사받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딱 버티고 있는 문화지 않나. 그래서 일본에서 종종 듣는 이런 걱정? 들이 나는 사뭇 신기하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는 케군의 유년시절을 듣고 난 단박에 뭐가 부족한지 알았기 때문에 하루가 어릴 때부터 한국식으로 또옥같이 엘리베이터에서 인사시키고 택시에서 내릴 때 인사시키고 물건 받으면 고개 접으며 인사시켰기 때문이다. ) 그리고 저번에 운동회 때 전교 대표로 마이크 잡고 프로그램 소개했잖아. 그거 선생님이 시켜서 한 거 아니야. 아무도 손 안 드니까 자기가 손들어서 하겠다고 한 거야. 대단하지 않아? 어떻게 그렇게 거리낌 없이 발언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난 여행의 힘이라고 생각해.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낯선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 상대방이 웃으면서 반응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럼… 다녀… 와. (풀썩)

아빠들이 어쩔 수 없이 소외감을 느끼는 환경이 되어버리는 것이 때때로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워킹맘에게 항상 육아책이 말하는 그대로 아빠에게 돌려주자면 관계에서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니까라며 케군을 다독였다. 대신 게스트 하우스나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숙소는 절대 안 되니까 직원이 상주하고 어느 정도 스케일을 가진 호텔을 가라고 꼭꼭 당부했다. (칫, 어떻게 알았지 바닷가 작은 숙소에서 비빌려그랬는데)

여행은 준비부터 너무 즐거웠다. 같이 호텔을 고르고 가고 싶은 장소를 리스트업하고 가져갈 짐을 체크하고 교통수단을 함께 정했다. 소올직히 케군이랑 안 가니까 우리가 어디서 저녁에 술을 마실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동선이 얼마나 자유롭던지. (이것도 좀 둘이 가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다. 매 저녁식사를 너무 잘 먹어야 한다는 것도 우리의 발목 잡… 트랩… ㅠㅠ 미앙해 케군)

이케부꾸로에서 그린카를 타고 갔다. 일반 전철의 일부 좌석이 지정석으로 되어 있는데 그 차량을 그린카라고 부른다. 15개의 차량이 있는 긴 전철 중 2개 차량이 그린카 차량인 경우가 많다. 편도 천 엔 정도이고 요일에 따라 변동이 있다. 주말보다 평일이 더 비싸다. 도쿄와 직결되는 근교는 통근시간에 많이 이용하는 전철 노선이라서 평일이 오히려 편히 가려는 그린카 이용객이 많아서 붐비기 때문이다. 신칸센처럼 테이블도 있고 어떤 곳은 콘센트도 있어서 아침밥을 해결하며 노트북으로 일하며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출발했던 일요일은 매우 한산했다. 부디 가마쿠라도 여유롭길!!

나는 요즘 이 쪼꼬미에게 불안함을 느낀다. 언제 이렇게 컸지. 기다란 다리를 볼 때마다 가끔 어른스러운 눈빛을 할 때마다 나보다 더 유창한 일본말을 하거나 내가 모르는 지식을 늘어놓거나 아니 그중에 제일은 화장실도 못 가게 내 몸 어딘가에 딱 붙어서 5초에 한 번씩. 엄마. 엄마? 엄마! 엄마…엄마~ 버라이어티 하게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가 줄어들었 때. 그리고 가끔은 오히려 귀찮다고 아~ 진짜 엄마 쫌! 이라며 밀어낼 때. 철렁한다. 그게 맞는데 서운하다. 그러면 내가 너무 못나게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아이에게 의존했었구나. 덜컥 무섭다.

그래서 조급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놓아야 하니까 시간이 없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기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은 정답이었다. 우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짝이라고 확인하면서도 하루가 혼자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해 나가는 걸 보며 안심되고 좋았다. 나는 이제 슬슬 귀여워하지 말고 멋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고 나름의 해결책을 얻기도 했다.

-엄마?
-응?
-에노덴 (전철) 바닥이 나무야. 진짜 오래된 전철인가 봐. 위에 선풍기도 되게 옛날 거 같아.

나가세 역에서 내려서 대불상을 보러 가는 길은 정말 덥고 지치는 길이었다. 하루는 점심 먹은 노곤함과 싸우느라 뒷모습만 봐도 휘엉청거렸다. 딱 둘이니 나만 맞추면 되는 여행. 느릿느릿 아이의 속도를 따라 골목골목 사진도 찍고 생각도 했다.

도착해서 이…이.. 사진으로도.. 책으로 전달되지 않을 크기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이는 아무 데나 그냥 쉬고 싶은 기분 ㅎㅎ 아- 인생이여. 중요한 건 그저 타이밍이로구나.

-엄마, 친구한테 보여주게 사진 한 번 찍어 줘.
사회성 때문에 사진은 남기겠다는 거에서 성장의 흔적을 느낀 게 웃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에노시마 역이었다. 여기도 다리 하나 건너야 하고 만만치 않은 거리인데 큰일이네.

라는 걱정은 바로 사라졌다.
인절미 떡 하나 사주니 갑자기 에너지가 폭발했다. 아니 이렇게 연비 좋은 건 처음 본다… 여행 가기 전에 아이가 징징대면 어쩌지 아이가 힘들어하면 어쩌지 걱정하지 마시길. 우리 아이들은 너넨 지치지도 않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루 종일 날뛰지 않는가. 어떤 작은 즐거움을 주면 계속해서 가동할 수 있다.

에노시마 다리를 건너기 전엔 약간 서퍼들이 즐길 외국의 바닷가 느낌 숍들이 많다가

에노시마에 입섬하면 타임머신 탄 것처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됨.

사실 이렇게 섬 전체를 돌아보는 건 케군과 데이트한 이후로 오랜만이다. 아무튼 난 이 섬은 특정 유전자랑만 같이 오네.

포스팅이.. 너무 길어..
여기서 잠시 끊어가야겠어요.

영상으로 보는 하루의 여행도 함께하세요

https://youtu.be/gY3xK1WWT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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