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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다녀왔던 가마쿠라의 레스토랑을 다시 한번 가기로 했다.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고 가 볼 데가 얼마나 많은 데가 기본자세지만 가마쿠라의 Amalfi dellasera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먼저 가마쿠라까지 가는 동안 1시간 내내 수다 떨 수 있는 지정석에 앉아 워밍업을 하고 (수다를 위한 수다 워밍업?)

가마쿠라부터는 에노덴을 타고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과 일체화

바닷가 철길에 난 좁은 계단을 오르면 갑자기 토토로 세계 느낌 끝에 그림 같은 레스토랑이 출현.

언니 여기 뭐예요?
너무 예뻐요.
에노시마도 보여요!
리카짱과 함께 했다. 리카짱은 제일 살고 싶은 곳이 가마쿠라라고 했다. 지금 친정 부모님이 가마쿠라에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있단 소식을 듣고 본인이 살진 못해도 친정이 가마쿠라가 될지도 모르는 게 뛸 듯이 기뻤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나도 살포시 여기서 살아보는 상상을 조금 했다.

언니! 언니! 여기 보세요. 앉아보세요. 열심히 찍어주는 리카 사진사에게 어플 말고 기본으로 부탁해요~ 사기를 꺾어놓음. ㅋㅋㅋ 그리고 요즘 너낌으로 (내 개인적 생각입니다) 기본 카메라를 살짝 밀며 리카 사진도 찍어주었더니

리카는 얼굴에 주름이 많은 편이라 어플 아님 싫다고 진저리를 친다. 그냥 주름이 아니라 눈웃음이 철철 흘러 예쁘고 너무 사랑스럽다고 오만번 얘기해도 리카 귓등이 모두 튕겨냈다. 리카는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뜯어 황금비율과 비교해서 예쁘다 못생겼다 판가름 짓기 바빠 보였다.

-아냐. 하늘하늘 여리여리한 너의 첫인상에 말하면 말할수록 여성스럽고 배려심 깊은 성격이 더해지고 마지막에 그 러블리한 눈웃음이 덮쳐오니까 그냥 너를 아! 정말 예쁜 사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니까. 피부도 예뻐, 눈도 반짝여, 볼 수록 대할수록 더 예쁘다니까. 그게 니가 싫어하는 그 주름 가득하게 빵 터져 웃을 때 제일 사진에 잘 나와.

-그게 뭐예요 ㅋㅋㅋㅋㅋ 난 내 얼굴 너무 싫어요.

뭘 해도 다 튕겼다. 내가 칭찬을 좀 못 알아듣게 했나? 언젠가 내가 보는 너의 얼굴과 네가 생각하는 너의 얼굴이 똑같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창 밖 풍경이 달라지는 카페 (전철)에서 수다 한 시간과 귀여운 에노덴을 타고 바닷가 레스토랑에 도착하면 진짜 맛있는 이탈리안이 있다. 무엇보다 맛이 있다는 게 예능감 넘치는 요소.

빵도 맛있음. 샐러드 신선.

-나도 눈은 복어처럼 튀어나와 있지. 코는 감자코에 앞니는 토끼처럼 크고 턱도 넙데데해, 팔자주름에 웃으면 비대칭이라 하나하나 얼마나 못생겼어.
-아니에요! 언니 진짜 언니는 어쩌구 저쩌구 저쩌구예요!
(음..음.. 내 손으로 블로그에 낯 뜨거워 못 적겠음)

리카는 내 장점을 끝도 없이 읊었다.
다 듣고 나는 말했다.
-응~ 나도 알아.
-안다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볼 땐 그렇게 예쁜 데만 골라 봐 주면서 본인 얼굴에 대해 야박한 리카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도 관대하게 될 수 있을까. 다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알게 하고 싶지만 당장 아이디어가 없었다.

레스토랑이 있는 언덕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동안이 약간 토토로 세계.

나는 리카를 만나며 사람 공부를 했다.
엄청나게 한꺼번에 아주 많이.
지금까지 이런 친구가 주변에 없었다. 혼자만의 생각이 많은 친구.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자신을 깎고 갈아 세상에 끼워 맞추는 친구. 아무 보호막 없이 바람 앞에 흔들리는 작은 촛불처럼 아무도 모르게 몇 번이고 꺼지고 아무리 오래된 과거도 풍파 되는 일 없이 모두 다 기억하고 또 아파하는 친구.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이 마치 자기 피부처럼 다 느껴져 본인의 감정을 절대 우선하지 못하는 친구. 어떤 기분인지 잘 몰랐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참 피곤하게 사네. 한마디 뱉듯이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을 스킵해 왔다. 리카는 세상 딥한 인프피였다. (너 인프피 나온다. 봐라. 장담하면서 엠비티아이 시켰음. 그리고 나왔음.)

다행스럽게도 리카는 내게 마음을 많이 열어주었고 자꾸 나보고 언니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길래 진실을 말해줬다.
-니가 좀만 더 어린 날 만났으면 욕했을지도 몰라.
-왜요.
- 철도 없고 싸가지도 없고 재수도 없고 생각이 없었거든..
-상상이 안 가요. 지금은 많은데…
(한국말 완벽하다가 가끔 재일교포스러운 문법이 튀어나와서 개웃김 ㅋㅋㅋㅋ)

-언니 이렇게 좋은데 불러줘서 고마워요. 나는 아마 오늘도 집에서 소파에 누워있다가 시간이 가는 걸 보며 조바심내면서도 안 움직이다가 마지못해 장을 보고 아 또 오늘도 아무것도 못했다 자책하며 하루를 보냈을 거예요.
-그럴 때 있지. 그냥 니가 P라서 그래. 조금이라도 메모해서 한번 계획 세워보자. 딱 지킬 수 있는 간단한 것만. 그러면 아주 작은 거라도 달성하면 그런 자책감은 안 들지도 몰라.
-언니가 맨날 구글 킵에 메모하고 에버노트 쓰고 그러는 거 보고 너무 존경스러워서 다운받아서 해 봤는데 며칠하고 안 돼요. 그러면 또 난 안돼. 역시 안돼. 이러고 내가 더 미워져요.
-아 그런 앱 활용을 못하는 거는.. P라서 그런 건데… (기승전 MBTIㅋㅋ)  인스타 보면 간단하게 만드는 레시피나 이런 거 보면서 난 자극받기도 하고 갑자기 따라 해보기도 하고 그러거든? 약간 즐거운 기분을 키워보는 거지.
-그런 거 보면 이렇게 세상엔 잘하는 사람 투성인데 난 살림도 못해. 이렇게 예쁘게도 못해. 내가 미워요.
-와… 신기하다. 너무 재밌어. 막 연구하고 싶게 만들어.
- ㅋㅋㅋㅋㅋ 한심한 게 아니라 재밌다고요? 지금도 솔직히 여기 앉아서도 다른 쪽 머릿속엔 집중이 안되고 걱정거리… 뭔가 찜찜함.. 이런 게 있어요.
-그래? 그럼 이런 생각을 해 봐. 나는 이렇게 나오면 내가 이곳에 온 만큼 무언가 얻어가려고 하는 버릇이 있거든? 가치를 창출하려고 들어. 예를 들면, 여기 커틀러리 모양이 특이하네? 맘에 들면 나도 다음에 이런 디자인을 찾아봐야겠다. 이 집은 여자 스텝이 한 명도 없네? 남자들 뿐이네.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왠지 다들 서투른 사람이 없고 서비스에 막힘이 없구나. 오래 일했나 보다. 뒤에 파스타 진짜 한 땀 한땀 수제로 만드는구나. 12시 넘어가면서 해가 점점 이동하네? 다음에 오면 오른쪽 자리에 앉아야겠다. 아까 에노덴에서 한 50대쯤 돼 보이는 여성분 옷차림 봤어? 블랙 원피스에 작은 진주 목걸이 진짜 예쁘더라. 나도 그런 옷 입을 수 있는 50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에 집중한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거든?

그냥 닥치고 들어주면 될 걸 나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게 내가 생각해도 지랄 맞아 나중에 돌아보고 웃겼다. 진짜 이 오지랖...

사실 여기 델꼬 온 것으로 내 도움은 확실했다. 왜냐면 리카가 요새 우울해 보였거든.

우리는 자연광 세러피 팍팍 받으며 인터넷에 본 웃긴 썰이나 떠들며 깔깔깔깔 바닷가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나는 리카를 만나며 확실히 한 가지를 배웠다. 사소하게 흘린 말 한마디라도 살짝 쎄했다면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다시 진심을 알려주고 되짚어서 고쳐 말하는 과정은 애정표현과 같다는 것.

난 누가 내게 했던 말을 잘 기억하지도 않고 새겨듣지도 않는다. 대부분 내 안에 답은 알아서 정해져 있을 때가 많다. 남의 말에 상처를 받기는 하지만 나한테 함부로 할 거 같은 사람과는 처음부터 관계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철딱서니 없이 살아온 덕분에(?)  어디 가서 눈치 보는 법은 없으니 상대도 알아서 말을 가려하기도 하는 것도 있겠지?

하지만 리카처럼 세상의 당연한 것들 하나하나에도 생각이 많고 깊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보통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탓이 있다고 결론짓는 사람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람들 팔자라고 생각했을 텐데 무슨 마음인지 리카의 그런 세상 모든 것에 미안한 마음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 한 다음에 집에서 곱씹어보다가 나 같은 사람은 안 그랬겠지만 이 말을 리카라면 더 후벼 파며 이렇게까지 생각했을 거야.라는 가정과 상상을 해 보는 게 가능해졌다. 리카의 생각을 한참 많이 듣고 나서 학습한 결과였다.

 

그래서 다시 메시지를 보내 그때 내가 했던 그 말에 대해 좀 더 여과 없이 자세하게 표현해 봤다. 역시나 리카는 ‘어머? 그런 말을 우리가 했어요? 난 다 까먹었네’라는 답을 한 적이 없다. 다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나 오해한 적도 있지만 의외로 그렇게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자신만큼 사소한 것을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을 보듬어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인프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하하하하. (뭐냐 이거 나 단순히 정복욕 아냐?ㅋㅋㅋ) 

흠흠 아무튼 난 얠 꼬시고 싶은 거 같다. 

인프피는 인프피로 살기 힘들다지만, 나는 점점 나이 들수록 유쾌한 인프제가 되고 싶다. 그래서 인프피를 연구하는 중이다. 왜 인프제냐면...  아무리 생각해도 P로 사는 건 상상이 안돼... 구글 스케줄, keep, 에버노트, 블로그 없이 사는 건.. 상상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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