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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메이트 이쿠미와 전시를 보러 갔다. 

 

1970년생 아라키 타마나상은 대학시절 멕시코 유학을 경험했는데 전신주에서 늘이고 당겨서 질서 없이 전기를 갖다 쓰던 집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우리도 하나씩 집을 골라 비어있는 콘센트에 연결해서 멕시코에 집을 지어봤다.

내가 먼저 집을 짓고 다음 이쿠미는 한참을 고민했다.

-어쩌지.. 웅...웅... 

-왜 왜? 둘 데가 없어?

-아니~ 동짱 가까이 살고 싶었어..

 

내 옆에 살고 싶었다는 말이 웃기고도 감동적이어서 순간적으로 코 끝이 찡했다. 도란나봐. 이런 걸로 찔끔하고. 이런 순간들이 모여 보통의 관계가 훅 깊어지는 거 아닐까. 

이곳은 작가님이 사이타마 아파트 단지에서 살던 기억이다. 다닥다닥 붙고 개성 없어 보이지만 하나하나 열어보면 따뜻하고 각양각색.

랜덤으로 열쇠를 받아 열어보는 체험이 있다.

 

 '100W 의 빛 어쩐지 그립고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멀리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탓일까.' 라는 타이틀이 작품보다 인상적이었다.

비 오는 날 미술관 안, 레스토랑에서 아늑하게 양식을 먹었다. 어쩌다 예전 일을 추억하는데 처음 이쿠미 집에 놀러 갔던 날, 내가 했던 말을 이쿠미가 친정에 갈 때마다 생각한단다. 이바라키현에 사는 이쿠미는 집에서 역까지 자동차로 운전해서 간 다음 역 근처 주차장에 세워두고 전철로 대학교에 통학했다. 드넓은 이바라키현에 사는 사람들은 자전거로는 어림도 없는 생활권이라 성인이 되자마자 면허를 따고 1인 1대 자동차를 구입한다고. 그래서 주차장 겸 마당이 딸린 집에 자동차가 4대씩 주차되어 있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다. 그 주차장이 정말 깜깜했는데 달동네지만 서울살이만 하다 처음 벗어나 본 게 오사카 도심, 그리고 관동지역으로 옮겨 간 나에게 가로등이 없는 길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 동짱이 어디가!! 데체 왜 이런데 날 데려온 거야!! 악 깜깜해!! 계속 그랬거든 

-내가 그랬어? ㅋㅋㅋㅋ

-응. ㅋㅋㅋ 난 너무 익숙했는데 사람이 무서울 수도 있겠다 싶은 거야. 

-아ㅋㅋㅋ 진짜 웃기다. 농담이었던 거 알지?

-알지. ㅋㅋ 근데 친정집에 갈 때마다 그 주차장 지나갈 때마다 생각나. 

 

그래서 나도 이쿠미가 기억하지 못할 추억을 꺼내봤다.

-나는 있지, 글씨를 쓸 때마다 너 생각해.

-왜에????

-예전에 대학생 때 우리가 무슨 전시를 갔었어. 그때 주소랑 이름 쓰는 방명록이 있었는데 네가 정말 천천히 예쁘게 글씨를 쓰는 거야. 나는 항상 성격이 급해서 글씨가 악필이거든. 혼자 있는데도 그런데 너는 방명록 담당자가 앞에서 기다리시는데도 아랑곳 않고 천천히 쓰는데.. 내 주변에 사람들 다 좀 성격이 급한지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네 속도는 뭐랄까... 거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ㅋㅋㅋ

-크크크크크 내가 그랬어?

-어어.. 근데 정말 글씨가 예쁘고 침착하더라고. 그리고 글을 천천히 집중해서 쓰는 모습이 너무 교양 있고 우아했어. 그래서 이제 글씨를 예쁘게 쓸 상황이 오면 널 떠올려. 네 흉내를 내. 사람들은 글을 쓰는 동안 절대 재촉하지 않을 거란 걸 나는 봤으니까. 

-내가 모르는 내 모습 들으니까 너무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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