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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로 엄마가 쓰러지고 한국으로 소환되었지만 가족이 공중분해돼서 갈 곳 없던 나를 재워주고 먹여주고 함께 살게 해 준 소중한 메텔. 오랫동안 블로그를 함께 한 분들이라면 아시리라. 그때, 내가 몸 뉘일 곳을 준 사실보다 혼자였다면 한 없이 새까만 절망 속에 들어갈 뻔했던 시기에 지루할 틈 없이 내 마음을 뉘일 곳을 만들어 준 사람이다.  평일엔 일 끝내고 아무도 없는 고시원에 들어가 주말이면 내게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엄마를 병문안하고 적막한 고시원에 들어가 사는 생활을 했다면 난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지옥을 살고 있었을까. 물론 이러나저러나 슬펐겠지만 메텔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밤은 슬프고 어느 밤엔 의미를 찾고 어느 밤엔 같이 웃었다. 내 인생에 분명 언젠가 의미도 이유도 찾을 수 있는 과정일 거라고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 되었다.

어느새 혼자 똑 부러지게 큰 아들을 데리고 둘이 도쿄에 놀러 온단다!! 맙소사 살다 살다 우리가 아들들을 데리고 도쿄를 놀러 다니는 날이 다 온다.

우리는 단풍이 아름다운 롯폰기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냥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아니 우리가 처음 만난 스무세네 살쯤으로 돌아간 듯. 진짜 근데 메텔은 늙지 않는다. 사이보그인가.

메텔 진짜 쪼꼬맣고 귀엽지 않나요? 얘가 벌써 마흔이라니 믿기지가 않네. 메텔은 서른 중반에 출산을 했는데 하도 애기 같은 체형과 얼굴의 산모라 산부인과 어떤 간호사가 나이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면서 고딩이 사고 쳐서 임신한 줄 알았다며 사과했단다.
동안이라니 듣기 나쁜 말은 아닌데 어? 조금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1. 참 선입견 어마 무시한 분이네 2. 근데 그런 생각을 했단 것이 너무 양심에 가책을 느껴 본인에게 사과를 하다니 궃이? 3. 아! 고딩의 임신이 사고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이 나는 불편한가? 4. 동안도 어느 정도여야지. 성인을 미성년으로 보거나 청소년을 유아로 보는 건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닌가? 우린 둘 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살짝 불쾌함이 묻은 헛웃음을 헐.. 대박… 하며 흘렸다.
아무튼 메텔은 아직도 넘나 넘나 베이비~ (친한 사람이 베이비로 표현하는 건 애정이 있으니까 괜찮아! ) 그냥 얠 보고 있으면 가능성으로 넘치는 기분이 든다는.

베이비가 낳은 베이비.

메텔이 마지막에 일본에 온지도 3년이 넘었다. 그동안에 생긴 시부야의 미야시타 공원도 가 보고

가는 길에 라그타그( Rag Tag) 명품 중고샵도 훑어보고 저녁은 메인이벤트 ‘자우오’ 이자카야에 물고기 잡으러 간다.

시부야를 어깨동무하며 휘청휘청 걷는 아들 두 놈.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인거신가. 너무 웃기나.
어릴 때 여의도 주렁주렁 을 같이 구경간 게 전부고 그때 허니는 거의 대화도 없었는데 애들은 선입견이 없어서 그런가 그냥 바로 친해진다. 상대를 믿는다. 너는 분명 나를 좋아할 거야.라는 자신감이 있다.
게다가 성향이 허니도 하루도 조용한 상대를 좋아하고  (그렇다고 본인들이 조용하다는 것은 아니다) 공격성을 싫어한다. 그리고 하루는 기본적으로 누굴 보살피는 걸 되게 좋아하고 허니는 굉장히 예의가 바르다. 한 살 형도 엄청 대우해준다. 그러니 이 조합은 잘 될 수밖에 없는 주식임.  

자우오 시부야점에 갔더니 한국인 스텝 언니랑 엄마가 한국사람이어서 한국말할 수 있는 언니가 있었다. 와! 반갑슙니다!!

처음엔 허니의 물고기 잡기를 돕던 메텔. 낚시 바늘에 물고기 살갗이 걸릴 듯 말듯하는 감각에 질겁해서 퇴장시킴.

나님 투입. 남자아이들이라 바늘이 물고기 살을 뚫고 잡힌다는 사실  따위 신경 안 쓰이나? 마냥 즐겁고 좋아함. 이 또래 여자 아이들은 충격적일까?

아무튼 허니는 진짜 큰 물고기 잡고 이다지도 보람찬 여행이 없다.

회, 튀김, 구이, 미소국 종류별로 시켜 먹었는데 정말 대박 맛있었던 건 그날 처음 먹어 본 ‘가마메시’ 솥밥이었다. 도미를 잡고 솥밥으로 해 달라고 주문했더니 2인분짜리 작은 솥에 도미 육수 잘 버무려진 솥밥 (도미도 들어 감)이 갓 지어져 나와서 너무 잘 먹였다. 밥 알이 탱글탱글 윤기 났다. 여긴 엔터테인먼트 요소도 칭찬하지만 기본인 음식의 맛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이 진짜 좋다. 시부야라서 외국어 가능한 스텝들 잘 배치해 둔 점도 굿.

이제 베테랑 강태공 하루.

오- 케군도 있음.
자우오 간다니 자기가 알아서 먹으러 오셨다.
예전에 처음 연애 시작했을 땐 특유의 일본인 부끄러움을 여지없이 발산하시느라 내 친구 만날 땐 절대 같이 안 가고 내가 왜 거길? 내가 왜 모르는 사람을? 내가 가서 머함? 거 참 답답한 소릴 하더니. 이젠 좀 한국 부인 덕분에 철판이 좀 깔렸다.
너한테 아무도 뭐 시키지 않으니 그냥 가는 거임.
한국에선 내 친구의 친구는 내 친구인 거임.
한 번 만나면 이제 모르는 사람 아니니까 계속 가도 되는 거임. 이런 (말도앙대늨ㅋ) 논리에 살짝 익숙해졌다.

중간에 마술쇼 보여주셨다.
루이비통 모델 같던 배색의 허니

밥 먹고 디저트로 미야시타 공원 쇼핑몰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에 갔다.

아이스크림 맛, 시리얼 종류, 시럽 등등 골라서 만나는 거였는데 하나에 900엔… ㄷㄷㄷ

메텔도 나도 뇌의 반은 애들한테 정신이 쏠려있어서 예전처럼 우리 얘기만으로 꽉꽉 채울 수 없었지만 같은 시기에 같은 또래 애를 키운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친구끼리 행운이라는 것만은 인정이다.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의 영역이 넓어지고 이심전심이 터질 수 있었다.

미야시타 밑에 새로 생긴 이 요꼬쵸(골목) 분위기 늠흐 좋았지만 지금은 저 곰돌이들을 케어하며 조용히 지나가는 걸로. 다음은 우리가 성인이 된 아이들과 넷이 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 상상만으로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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