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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엔샵에서 나를 엄청 졸라 꽃가루 박을 사더니 엄마 생일상 차려주려는 거였다. 위에 금색 동그라미에 밑으로 나있는 끈을 당겨 도르르르 ‘축하합니다’ 라는 글씨가 굴러떨어졌다. 이 박을 일본말로 くすだま쿠스다마 라고 하는데 동서가 듣더니 “쿠스다마로 축하해줬어? しぶいね〜” 라고해서 쿠스다마가 가진 이미지를 나도 처음 배웠다. 시부이라는 형용사는 늙은이 같다. 중후하다. 연식있다. 애늙은이 같다.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은 뜻의 늙은 느낌을 말한다. 한국말로는 요즘 세대 같지 않은 멋을 뭐라고 수식할 수 있지?

화이트보드에도 엄마 40살 축하해. 이제 만나이도 마흔을 찍어버렸다. 내 깊은 슬픔을 알 턱이 없이 하루는 계속 축하하고.

이때가 아니면 이런 장난은 못하지. 아주 맛있는 얼굴을 하고 신나게 폭죽을 펑펑 터뜨린다.

저녁엔 제일 좋아하는 조각케이크 가게에서 셀프로 먹고 싶은 걸 골랐다.

촛불 놀이에 신난 하루 얼굴.

영혼 없이 생일노래를 불러주고 초는 하루가 불어서 껐다.

케군은 모카롤 케이크

난 과일 컵케이크랑

스트로베리 쇼트 케이크. 고민하다가 둘 다 샀다. (하루는 케이크 안 좋아해서 다른 쿠키를 골랐다)

왕따시 만한 딸기가 자꾸 나를 데려가라고 망울망울 불렀지 모야.

8월의 뽀얀하루

자전거 뒤에서 잠든 하루

볼이 흘러내린다.

밤에 둘이 산책을 가다가 복권같이 운을 점쳐보라는 식의 자판기를 발견했다. 랜덤이라는 이야기. 그래도 70엔 밖에 안하네 뭐가 나와도 손해는 아닐거 같아.

진저엘이 나왔다. 본 적 없는 메이커라 갸우뚱했지만 하루는 싫지않은게 나왔다며 엄청난 럭키가이가 된 얼굴을 했다.

주말 운동삼아 자전거로 우에노에 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오리보트 타기

귀여운 오리 보트말고 그냥 배 모양이 좋았는데…
귀여운 오리가 맘에 안 드는 하루.
근데 모터 보트 모양은 2인승이고 오리가 3인승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엔 하루를 사람으로 카운트를 안해서 ㅋㅋㅋㅋㅋ 꼽사리 유아로 2인승이 가능했지만. 돈 들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네.

낵아왜싫웍 꽥

오올… 이제 페달도 돌릴 수 있네. 내 뱃속 작은 세포였던 주제에 진짜 많이 길어졌다.

보트를 타고 우에노 시장에 가서 중국 식당의 튀긴 샤오롱빠오 포장을 부탁하고 어슬렁 어슬렁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한국 음식 가게를 발견했다. 떡볶이, 핫도그 분식이랑 골목 한가득 과자와 라면들을 팔고 있었다.
“하루야, 엄마가 이거 읽으면 하나 사줄게.”
눈이 땡그려져서 필사적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 입으로 낳는다. “다….다을…..다알…꽁!!! 잉….잘? 자??절…. 아!!! 아!! 인절미!! 꼬…꼬…부기..아니 꼬북치???!!”
“달콩 인절미 꼬북칩! 와!!!! 하루야 진짜 잘했어 맞아 맞아!! 하나 가져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가게 아저씨가 나오더니
“야~ 너 한국말 잘한다. 한국 학교 다녀?”
“하하 감사합니다. 얘는 일본 초등학교 다녀요.”
“어유, 그래? 근데 너 진짜 한국말 잘한다. 이것도 읽으면 아저씨가 이것도 줄게.”
하루는 눈이 더 똥그래지고 볼이 발그레 하다.

“꼬북칩! 코..옹 스..아! 콘스프 맛!!!” 체면을 지켜냈다.
아저씨는 약속대로 함박 웃음을 지으며 하루 품에 꼬북칩 두 봉지를 안겨줬다. 하루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돈은 한개 값만 받으셨다. 애가 귀엽다며 이거 유통기한이 다 되서 미안한데 서비스라고 내게 옛날 잡채 두 봉지, 치즈 라면 두 봉지를 더 꾹꾹 넣어주셨다.

몸둘 바를 못찾고 너무 감사해서 세상에 세상에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자마자 하루가 “엄마 아저씨 엄청 친절하시다.” 흥분한 얼굴로 나한테 말했다. 그 말씀을 들으신 아저씨가 너무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꼬마야~~ 하고 다시 부르시더니
떡이랑 땅콩이 박힌 작은 초코바를 손에 쥐어주시고 “한국말 공부 열심히 하고 다음에 또 와~” 하셨다.
제일 좋아하는 초코에, 죽고 못사는 떡이 들었고 거기에 고소한 땅콩이 박혔다니.. 자기 취향 한국 과자에 하루는 입틀막 표정이었다. ㅋㅋㅋㅋㅋㅋ
다음에 가서 또 팔아드려야겠다. 진짜 감사합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자전거 연습. 이걸 막 갑자기 잘 타게 되는 것도 걱정되니까 무서워서 겁을 내며 타는 아이가 난 미덥고 오히려 든든한 기분이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경계심이 많고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발견을 한다.

자는 얼굴… 너무 조하..
지난번에 댓글에서 하루 자는 얼굴 복숭아 같다고 그러셔서 볼 때마다 복숭아로 보이기 시작

하루랑 단 둘이 ‘야키니쿠 라이크’에 갔다.
칸막이로 나누어진 일인용 테이블이 쪼르르륵 늘어선 고깃집이다. 1층에 딱 하나 있던 2인용 자리로 안내 받았다. 회전스시집처럼 벽에서 물도 나오고, 아래 서랍을 열면 수저, 물티슈 등등이 들어 있고 주문은 타블렛으로.

엄마 왜 여기 연기가 안 나는지 알았다!!
밑에 청소기가 있어서 밑으로 쑹쑹 들이마시는거야!
원리는 모르겠지만 연기가 안나는 시스템이었다.
옷에 냄새 안 배지, 고기랑 야채만 먹을 수 있으니 다이어트에도 좋지, 점원이랑 대화 할 필요도 없고, 아이에게 신기한 사회공부 (연기 없애는 기술)도 됐지. 너무 재밌는 날이었다. 여자 혼자 고기 먹으러 가기에도 더할 나위 없겠다.

얘 혼자 200그램은 시켜 먹은거 같다.

마지막은 왕창 구워서 밥 위에 올린다음 소스를 살짝 뿌려달래. 이좌식 먹을 줄 아네
(나도 예전엔 잘 몰랐지만 아기처럼 보인다고 전부 아기 스푼을 주시면 너무 작아요. )
어른 스푼 다시 달라고 할까?
아니야 친절하게 가져다 주신건데 미안하니까 그냥 쓸래. 먹긴 먹을 수 있어. 이런 대화를 나눴다 ㅋㅋㅋ

유리카모메 탄 존제비

오렌지 쥬스랑 아이스티

아이스티로 바꿔달래는 아이

순간 포착 아니고 한 참을 이렇게 멈추고 치즈를 만끽한 아이

내가 좋아하는 독일 케이크 집에 하루를 데려 갔다.
근데 하루는 어른 맛 같다고 했던가? 싫다고 물린 케이크. 너무 시무룩해있어서 다른 쿠키로 다시 사줬다.
뭐야… 어떨땐 어른처럼 대해야 하고 이럴땐 또 아직 아기수준이고 애미도 헷갈리네.

아무튼 후… 이 집 내가 엄청 팔아주는 중. 입맛이 케군이 좋았던데 데려가면 백발백중인데 내가 좋았던데 는 이렇게 호불호가 갈린다. 그렇게 말했더니
“엄마 그건 아빠랑 내가 디엔에이가 똑같아서 그래. 엄마는 좀 달라서 그래. “ 내 뱃 속에서 열 달을 넣어 키웠는데 그런말 하면 머리론 알지만 심장이 속상햌ㅋㅋ

그날, 특별히 한글 그림책이 있었다. 채소를 정교하게 그리시는 작가님 그림을 작게 전시하고 있어서 한글로 번역된 책도 놓여있었다. 늘 이런 걸 하는 곳은 아닌데 신기하게 하루를 데려간 날 또 이런 한글 책을 만났다.

스팸 깡통에 그려있는 스팸 오니기리를 집에서 해 보고 싶다고 직접 만들었다.

진짜 ㅋㅋ 이건 안 맛있을 수가 없지.

키자니아 가는 날 시간이 좀 남아서
‘코메다 커피’의 말차 빙수

고객의 소리 쓰는 아이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쓰랬더니 있지만 못 쓰겠단다. 솔직하지 못한 고객의 소리. 이거이거 소심해서 어따써먹어

엄마, 하루는 일본 키자니아에서 일본 키조를 많이 벌어서 코로나 끝나면 한국 키자니아에서 환전 한 다음에 한국 키조로 한국 장난감을 살 거야.
엄청 신기한 걸로. 절대 본 적 없는 거.

좀 싫은 직업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이란 기분으로 잘 참고 ㅋㅋㅋㅋㅋㅋ 일했다.
리얼, 사회생활 체험이네. 직장인의 비애까지 가르쳐주는 키자니아. 만든 사장님 존경합니다.

은행에서 작은 지폐를 큰 돈으로 바꿈. 이걸 하는데도 어찌나 심장이 둑은둑은 하는지. 작은 가슴에 손을 대 보면 콩알이 뽕딱뽕딱 뛰는게 느껴진다. 이거이거 소심해가지고 진짜 어떠케 ㅋㅋ

결혼기념일이라고 나를 꽃집에 데려가는 아이
엄마! 기념일이니까 꽃을 사자.
골랐더니 돈 내라고 해서 내 지갑에서 냈다
어때? 맘에 들어? 예뻐?
그리고, 아빠한테 우리 둘이 골랐다고 아빠한테 결혼 기념일 축하한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결혼기념일이니까 아빠에게 사다 준 거라고 ㅋㅋㅋㅋ 드라마나 영화에 세뇌된 나는 그런 기념일에 남자가 여자한테 꽃을 받는거라 생각했는데 하루는 ‘결혼 기념일’에 ‘꽃’을 준다는 정보는 듣고 우리가 아빠한테 선물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 뭐, 기억하는 누군가가 바쁘고 기억 못하는 누군가에게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거 좋다.
나는 맘에 드는 꽃을 집에 놓을 수 있고. 아빠는 화사하고 따스한 마음을 전달 받을 수 있고. 하루는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거들어서 자기도 그 이벤트에 끼고 싶었던 거였는데 이루어졌고.

키자니아 도쿄에 간 하루의 영상 구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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