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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자

도쿄에 눈 오는 날

Dong히 2022. 3. 1. 12:28

어??

어???!! 하루야 눈 온다!

강아지는 헐레벌떡 밖으로 나갔다. 짓눈개비처럼 애매할까봐 쥐어 준 우산은 장식이 됐다.

아휴 머리에 벌써 이렇게 올라앉았네.
친절히 털어주는 나에게 소스라치며 말한다
-엄마!!! 아까우니까 털지마!!
하루한테 온 눈이니까 하루 거야.
내리는 눈에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도 그럴만 하다.
15년 넘게 도쿄에 살고 있는 나도 하얗게 색을 띄는 눈을 보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눈이 도로를 덮도록 소복히 쌓이는 풍경은

도쿄 어른들에게도 동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흔치 않은 일.

사실 하루가 태어난 후로 한 번은 왔던 거 같은데 어릴 때 기억은 모조리 나지 않나보다.
-엄마 하루 이렇게 발자국 내면서 걷는 거 처음이야
-엄마 하루가 이렇게 혼자 눈 모으는 거 처음이야
-엄마 하루가 이렇게 많이 눈 만지는 거 처음이야
-엄마 하루는 이렇게 하얀 눈 보는 거 처음이야.
처음이야 처음이야 하루는 다 그 날이 처음이야.

-하루야 눈 보이는 카페 갈까?
역 앞의 작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눈이 땡그란 직원분이 “아.. 지금 안에 자리가 없는데 어쩌죠? 여기 의자에서 조금 기다리실래요?” 양 눈썹을 축 내리고 아이와 함께 온 손님을 안타까워 해 주셨다.
“밖에 있는 테이블 쓸 수 있을까요?”
“너무 춥지 않을까요?? 애기야… 밖에 눈도 오고 추운데 괜찮겠어?”
“하이. 다이죠부데쓰”
우리가 마지못해 추운 자리에 가는 줄 알고 계속 안쓰러워하시길래 음료가 나오는 동안 진실을 말해줬다.
“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이 내리는 눈을 보는 거거든요. 더 보고싶어서 일부러 바깥 자리에 가는 거예요.”
“ 어머!!!!! 카와이이…. “
음료 만들던 언니랑 주문 받던 언니가 동시에 합창을 하셨다.

너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일지도

모은 눈이 녹을 까봐 손수건도 깔아야했고
와플을 가끔 눈한테 주기도 했다. (급 생명을 얻은 눈덩이)

버스타고 가야 할 거리인데
제발 걷게 해 달라고 버스 안에서 눈들이 녹을 거 같다고 이들을 죽일 생각이냐고 냉혈한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졸지에 냉혈한=나)

어느새 발이 푹푹 빠지도록 눈이 쌓였다.

몇 개의 버스 정류장을 걸어 오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눈덩이

중간에 슈퍼에서 봉지를 하나 얻어왔다.

그 날의 행복한 얼굴을 박제해야지.
한참 오들오들 밖에서 떨고 온 나는 그래, 눈 오는 날에는 이거지.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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