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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여기 여기가 제일 즐거워... 내 호텔 (인수한 줄)

늦은 오후로 넘어가는 지금 이토록 인자한 정적 속 풍경과 손목의 시계가 매칭이 안 된다. 이 시간 도쿄라면 학교에서 집으로 달려오는 (천천히 와도 돼...) 하루가 총을 쏘듯 초인종을 누르면 (제발 살살 눌러줘..) 바빠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우리 애기 다음 스케줄을 위해 머릿 속도 손 발도 풀가동이 시작되는 시간이라서.
게다가 이번 여행 내내 하루는 아빠 손 잡고, 아빠 차 옆좌석을 꿰차고, 온천탕도 아빠랑만 가니까 나는 같이 이동만 하는 관광객인 것처럼 (같은 투어 상품 쓰는 다른 손님? ㅋ) 퍼스널 스페이스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럼 나는 혼자 여성 전용 노천탕을 가 볼까?
밖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가지런히 놓여진 게타를 신었다. 불길한 예감... 어릴 때부터 '쪼리' 못 신는 나는 심지어 굽도 높고 딱딱하게 만들어진 게타에 발을 끼울 때마다 안전벨트 없는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다. 저기 밑에 자연이 우거진 절경 속에 피부가 반들반들해지는 온천수를 발견하고 열심히 파 놓았을게 분명하다. 예전이면 앓던 병도 치료되는 명약으로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갔을 거야. 하지만 보라고. 이 계단을 좀 보라고.

저기 나무 칸막이로 막아 놓은 곳이 목표 지점. 아슬아슬한 진기명기 끝에 도착했다. 삼선 슬리퍼였으면 내가 중간에 운치도 느끼고 했을 텐데 힘들어따...
그래도 보람차게 뜨거운 탕에 내장을 데우는데 성공

작은 집 거실이 이러면 눈이 핑핑 돌아가겠지만 면적이 넓으니까 휘황한 무늬들이 포인트에 지나지 않아 너무 조화롭고 멋드러진다. 볼 때마다 속으로 지구를 뿌셨다. 가질 수 없는 너.

사자에상 만화 중에 제일 웃겼던 페이지.
"여러분!! 샐러리맨들한테만 맨날 세금을 걷어갑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하더니 이렇게 모인 샐러리맨들에게 넥타이를 파는 장사꾼이었다는 컷. 아앜ㅋㅋ

아직 그치지 않은 빗줄기를 창가 자리에서 바라 본 완벽한 순간을 잠시 감상하며

씻고 온 우래기.

두번째 저녁 식사 때는 다크한 나무쟁반에 푸른 종지였다. 3열 종대 오열 맞춰 들어 온 푸른 종지들 군기가 빡 잡혀 있었다.

묘가 스시가 정말 맘에 들었다.
일본에서 처음 먹어 본 묘가는 '양하'라고 하는 생강과 식물인데 파와 생강의 중간쯤의 느낌이다. 생강처럼 자극적이진 않다. 피클처럼 초절임으로 만들거나 국에 넣거나 샐러드에도 넣고 풍미유발템. 존재감 쎈 꼽사리 포지션이랄까. 고수, 샐러리, 깻잎, 바질, 딜 이런 향이 짙은 풀떼기 좋아하는 나는 일본에 와서 묘가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지...

맛있었던 샤브샤브식 돼지고기.

참, 하루는 버터로 구운 연어를 주셔서 싹싹 잘 먹었다.

2인용 나베요리

소바와 건어물 구이

이 양념장이 중독적이라 2일째 연속으로 먹은 오챠즈케

블루베리 케이크와 키나코 푸딩. 인절미 콩고물 맛이 마지막까지 신선합니다. 짝짝짝.

하나하나 집에서는 만들 수 없는 능력자의 손맛..

서재 한 켠에 한국 소설 '가시고기'를 발견했다. 스무 살 때 읽고 한국 소설 자체를 멀리하게 했던 책. 현실도 시궁창인데 가상세계 스토리에 너무 울었었다. 일시적 우울을 경험했었다는... 사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책을 끝까지 읽어 본 게 몇 권 없다가 스무 살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상실의 시대, 람세스, 몽실언니에 이어 읽은 책이 가시고기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도중에 그만두고 싶어 머릿속으로는 몸부림쳤지만 혹시라도 있을 희망을 기대하며 읽다 읽다 결국 절망의 지하로 꺼져버리고 !!! 무력감 같은 감정도 겪었다. 그 후로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도 읽어내고 슬픈 책이 덮어놓고 다 싫은 건 아닌데 유독 '한국 소설'의 슬픔은 겁이 나서 아직도 난 공지영의 슬프기로 유명한 소설이나 그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을 절대로 보지 않는다. (왜 공지영 소설이 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맘대로 이미지..?) 무섭다구!!! 너무 오래 아프다구!! 최근 읽은 슬픈 '파친코'는 영어가 원작이라 그런가 그 한이 서린 것 같은 망망한 슬픔에 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냥 너무 어릴 때 기억이 여전히 과장된 채 있는 것뿐일 수도 있다. 이제 나름 산전수전 겪어버려서 왠만한 소설이 현실보다 덜해 주인공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해버리는 나이가 되었을 수도… 그럴수도.. ?

이 날은 저녁 먹고 셋이 로비에서 12시가 다 되도록 책을 읽었다. 수 많은 호텔에서 지낸 '마지막 밤' 중 최고였다.

잘 자~

귀가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아침밥은 뭘까? 일단 포토푀가 보인다. 이건 우리가족 다 좋아하는 스프. 오옛.

방금 자연스럽게 포토푀라고 써 놓았지만 저런 한글을 난 처음 봤다. ㅎㅎ 일본어로 '포토후'라고 부르는 것만 익숙해서 찾아봤는데 프랑스의 야채 많이 넣고 끓인 스프로 pot이 냄비이고 fue가 불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fue 후라고 표시했구나. 발음이 어떻든 영어 철자와 카타카나 표기를 반드시 공식처럼 대입시키는 일본의 외래어 문화가 다시 한번…안타깝다…
집에선 소세지 팍팍 넣고 야채 넣고 불량한 맛으로 끓였었는데 베이컨에 양배추를 싸서 너무 고급스러운 국물 맛이었다.

결론은 마지막 날 빵이 나왔다!!!
와!! 케군과 하루의 환호성 ㅎㅎㅎ 십여차례의 한국 여행 중 레스토랑 랭킹 매길 때 '베니건스' '빕스' 이런 데 꼭 좋았다고 점수 주던 (혀가 미국이 고향인) 케군과 그 피를 이어받은 하루. 분명 케군 전생은 미국인이고 혀만 전생을 기억하는게 틀림없다. 살아 본 적도 없는 미국음식을 진짜 좋아한단 말이죠.
아무튼 빵이 나왔어. 소리질러~ 누가보면 우리가 일주일은 묵은 줄 알겠어. 민망..민망..

오늘의 코디 촬영 방해 하는 행인

결국 말리던 스텝이 촬영을 포기
가기 전에 호텔 1층에 있는 매점에 가서 케군이 맛있게 먹었던 버섯 절임을 샀다. (항상 마무리 식사로 카레를 고르면 나왔다고 함) 겨자에 묻혀서 먹는 특이한 스타일이었다.
카레도 사고 아버님 와인도 하고 계산대로 가서 젊은 여성분께 카드를 냈다.
한 순간도 쉬지않고 재잘 재잘 재잘 한국말로 이야기하던 하루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엄마 너무 많이 산 거 아냐? 우리 카드 안 되면 어떡해? 계산 할 수 있어?” 내가 계속 쉬지 않고 쏟은 대답들 중에 “괜찮아. 아빠 부자야~~” 이런 아무말을 막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었는데 (너무 많이 말을 하다보니 가끔 생각 없고 대충대충 하는 말도 되게 많다는 ㅋㅋㅋ) 계산하던 여자분이 더듬더듬 한국말로 (근데 너무 귀여운 한국말루!!) “ 한국 사람이에요? 아기도 한국말 할 수 있어요? “ 까암짝!! 호텔 매점에서 한국말 하는 능력자와 조우??!!
한국에서 1년동안 어학연수를 했다고 한다. 너무 말을 잘했다. 하루에게 발음이 너무 부럽다며 아무리 공부해도 이런발음은 가질 수 없을거라며 진심으로 이야기해줬다. 하루도 나도 가슴이 따스—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반갑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제서야 ‘아빠 부자야’ 무슨 민망한 소릴 지껄였나 창피함이 올라왔다. 이제 어딜가도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해야지..
반성 반성

시간이 아주 쪼오금 남아서

로프웨이를 타러갔다.
나가노현에 스키장이 많아서 산을 오르는 탈 것들이 많았다.

여기는 ‘냉산’이었는데 올라오자마자 다른 차원처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으스스스스스스스
추웠다.

나가노 대자연들아 안녕 ㅠㅠ
너희에 비하면 우리 같은 하찮고 소소한 것들이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마웠어

렌트 한 자동차를 반납하고

역에서 ‘토리벤또’를 샀다.

얼마전에 방송에서 일본인이 예전부터 여행가면 가장 시그니처로 먹는 ‘에끼벤’이라는 걸 봤다. 닭고기 ‘소보루’ (갈은 고기를 단짠으로 볶은 것) 나 구운 닭고기가 올라 간 것이 많다고. 소박하고 맛있었다.

오니기리를 두개 먹고 쟈가리코 (길쭉한 감자과자) 한 통을 까 먹고

애기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수고했어.
타테시나 온천여행은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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