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 살 가까운 어느 날 문득 이런 결심을 했다. 누군가 지난 일들에 대해 후회 섞인 말을 한다면 다 잘했다고 말하기로. 그리고 실제로 점점 그렇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해 -아니 왜 그랬어 -아 아깝다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했다 그거 말고 반대 선택을 하지 그랬어란 뉘앙스의 조언을 들을 때마다 속만 상할 뿐 내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난 후에 그들이 틀린 일도 종종 있었다. 어떤 선택도 돌아갔을 뿐 틀린 답은 없었고 인생에 무엇도 쓸데없는 경험이 아니었다. 사고와 방황도 나중에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더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해 봤자 공상 과학을 즐길 게 아니면 시간 낭비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생기는 경험들은 다양하기 그지 없다. 영어가 또 한 번 나한테 세상은 이렇게 재밌다는 걸 발견하게 만든다. 그날은 영어 회화 학원에서 한국에서 살아봤던 영국 남자 튜터를 만났다. 아직 20대인데 이미 두 나라 취업 유경험자라니 부럽고 신기하도다. 그룹 레슨이었지만 나 말고 아무도 예약자가 없었다. 운 좋게 일대일 수업이 되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화색이 돌며 한국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 에피소드 만으로도 긍정이 터지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어 나는 즐겁기 짝이 없었다. 사기 당한 경험도 인생의 거름으로 즉각 응용 가능한 유형이랄까. 보통 몇십년 쯤 흘러야 웃으며 회상할만한 걸 단 몇달 만에 과거형으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좋아하고 동경..
5년 만에 아키(국적: 타이완)를 만났다. 아키가 결혼과 육아에 도통 적성에 안 맞는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만나서 들은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 절정을 이뤄 정말 심각한 지경을 지나 거의 시트콤 수준이었다. 대학 다닐 때 아키는 일본인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었다. 연애 기간이 길었는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현남편이자 구남친인 그분이 한 달 중 20여 일 해외 출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주일 해외에 있다 3일 일본에 머물고 다시 나가는 식이었다. 아키는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뿐이다 싶을 정도로 그 생활에 만족했었다. 결혼 후, 가나가와현에 새 집을 지은 아키. 탓짱과 툿짱 (가명) 아들 둘을 낳고 빈번히 집을 비우는 남편과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와 살을 부대끼며 ..
역 앞 1분 거리 스파게티를 파는 레스토랑의 런치 타임은 카오스다. 안내하고 주문받고 서빙하고 치우고 세팅하고 계산하러 뛰었다가 곁눈질로 물 컵이 빈 테이블이 없나 체크하고 식후 음료수나 디저트를 시킨 손님이 밥을 다 먹었는지 신경 쓰면서 틈틈이 키친에 설거지 거리를 업소용 식기세척기에 나열해 넣어야 한다. 뇌와 몸이 풀가동이다. 할머니가 돼서도 이렇게 생활하면 치매는 안 걸릴 거 같은 기분. 계산하는 곳에 희한하게 계단 한 칸이 있다. 입점할 땐 오르는 계단이라 괜찮은데 나갈 땐 한 칸 내려가는 계단이라 발을 헛디뎌 훋! 할 수가 있다. 그동안 약 3년 근무하면서 야매 통계가 생겼다. 2,30대 손님은 90퍼센트 확률로 안 넘어진다. 설령 헛디뎌도 가볍게 다시 균형을 잡는다. 4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
여러분들 덕분에 우울함이 증발했어요. 체력은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조금만 활동량이 많으면 저녁땐 허리가 끊어질 거 같고 헉헉대지만 정신적으론 뭐였지 싶을 정도로 굉장히 좋아졌다. 이제 스멀스멀 피식- 웃었던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이 날 좋았지. 따스했지. 행복했던 기분이 선명하게 떠올라 살 맛이 난다. 하룻밤에 놀랍도록 많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있는 케군은 술과 함께 과식을 하고 꼭 걷자 한다. 그리곤 꼭 10여분 걷고 화장실을 찾아 쩔쩔맨다. 그날도 화장실 빌리려고 들어 온 신사에서 고요한 불빛을 사진에 담으며 기다렸다. 비싼 돈 주고 부은 걸 줄기차게 화장실에 내버리는 케군은 밑 빠진 독에 술을 붓는 느낌 아닐까? 술 못 마시는 나로선 신기하다 신기해. 사쿠라가 예뻐서 발길이 멈..
나란 인간의 최대 장점이자 특징은 매우 스케일이 작다는 것이다. 야망이 없어서 좌절이 흔치 않고 욕심이 거하지 않아 쉽게 만족하는 편이다. 일상에서 명확하게 매 순간 느끼는 건 아니지만 가끔 돌아볼 땐 자기 현실을 꽤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지금 문제없이 사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벅찬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으니까 별일 없다는 게 너무 고맙다. 그런 내가 얼마 전에 심하게 우울했다. 오랜만에 길게 한국에 나갔는데 며칠 후 코로나에 걸려 갇혀있다시피 했다. 첫날 언니들한테 미안하고 그냥 서러운 마음에 엄청 울었다. 몸도 아프고 졸음만 쏟아지고 시간은 가고 여기는 내 집이 아니고 한국에서 하려던 것들은 취소되고 먹고 싶은 음식조차 없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벼르고 벼르던 것들을 아무것도 먹고..
-하루야, 한자 테스트는 그럼 언제쯤 할 건지 얘기만 해줘. 그걸 정하는 건 하루 마음이고. 진심으로 같이 의논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렇게 말한 건데 갑자기 버럭! 하고 아이의 감정이 날아든다. -아!! 알았어! 지금!! 지금 하면 되지!! 지금 하면 될 거 아냐!! 헐… 얼탱이 없어. 예전의 그 울음이 들어있는 징징이 아니다. 짜증을 넘어 화가 담긴 사내의 외침 같은 느낌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가만히 내가 했던 말을 돌아본다. 그래 네 입장에선 저 말들이 마치 ‘어 널 못 믿어. 난 널 안 믿는 전제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하는 것처럼 들렸겠구나. 진짜 나는 대충의 시간만 알면 거기에 맞춰 마음의 준비나 스케줄을 짜려고 했던 것뿐인데. 내가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을 노려본다고 오해하고 있나. ..
하루는 발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여름에 생긴 물사마귀를 연고로 치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도 처음 알았는데 아이들에게 자주 생기고 대부분 물놀이할 때 옮는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액체질소로 물사마귀 하나하나 지져 없애는 치료만 존재했다. 지진다는 말은 엄밀히 다르다. 뜨거운 게 아니라 반대로 -196도의 저온 질소를 피부에 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비보험이지만 미량의 수은이 함유된 물사마귀 연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단점이 있었다. 액체질소 치료는 빠르게 없앨 수 있지만 아프고, 연고 치료는 아프지 않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달을 발라야 한다. 하루에게 선택지를 넘겼다. 연고치료를 골랐다. 정말 약속대로 두 달 열심히 스스로 발라줬고 얼굴과 목 가슴에 퍼져있던 물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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