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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오후 혼자 집에 일찍 돌아와 적막을 의식하자 갑자기 적적한 기분이 들었다. J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제: 왜에?
동: 적적해서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시시콜콜 늘어놓다가 적적한데 스스로를 더 적적하게 만드는 요즘 우리 행동들을 꺼내며 맞아 맞아 서로 공감했다. 매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거 먹고 똑같은 데 가고 똑같은 사람 만나고 아니.. 사람은 안 만나고 맨날 똑같은데 그렇다고 여행을 가자니 거기 가서도 똑같은 체인점, 편의점, 슈퍼에서 똑같은 걸 사 먹고 똑같은 커피를 마시고 그럴 것 아닌가. 그것도 피곤하고 할 맘 안 나고 새로운 시도도 도전도 만남도 없이 그저 시간이 가니 더 적적하다고.  
맞아 맞아.
언니 나 지금 통화하면서 우리가 왜 심심해지는지 안 거 같아요.  
상상력이 부족해진 거 아닐까?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도 어차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 뻔한 거예요.  어릴 땐 어딜 가도 특별했단 말이죠. 절대 같은 날은 두 번 있지 않다는 확신 같은 게 있었지 않아요?  신기하게 또 진짜 비행기를 혼자 타도 옆에 앉은 일본애랑 친구 되고 너무 세상에 모르는 거 투성이니까 어딜 가도 배우고 뭔가 넓어지고 새로웠어요. 다음에 여길가면 또 새로운 만남과 경험이 가득할 거야… 이런 기대가 무조건 생겼었는데. 이제 그런 상상이 안 돼. ㅎㅎ
그리고 마흔이 되고 난 이제 이 세상의 병풍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게 너무 느껴져요. 스무 살 땐 젊은 사람들밖에 안 보였고 그리고 그 안엔 내가 있었고 전부 나랑 내 친구들 중심으로 세상에 돌아갔던 거 같아요.

확실히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뭘 시작하기 전부터 뻔하다는 결론이 그려진다. 예전에 모르는 여행지에서 예쁘지 않아도 젊고 밝은 내게 대화를 걸어오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 이런 아줌마와 대화를 기대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스스로도 병풍을 자처하게 되는 내가 있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지나 않으려고 조심해야 하는 나 ㅎㅎ 리얼 마흔.


언니 우리 같이 당일치기 놀러 갑시다. 뻔한 체인점 나랑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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