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돼지갈비와 밑반찬

내가 방 안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하루는 너무 잘 지냈다. 서녕언니는 인생 두 번짼가. 육아도 잘했다. 입에 침 마르게 대답해야 하는 질문쟁이 하루의 질문을 다 접수 대응. 한국에서 처음 보는 거 투성이라 평소보다 질문력이 3배쯤 상승했었는데 그걸 다 막아내었다. 그리고 무슨 질문을 하든 마지막엔 기승전결로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야 돼 엄마가 얼마나 힘들겠어. 한 마디씩 꼭 붙였다. 언니 ㅋㅋㅋㅋㅋ 모든 질문의 결론을 어떻게 그렇게 ㅋㅋㅋ. 그 기술 훔침. 나 대신 하루는 언니네 동네에서 젤 맛있는 갈비를 먹고 너무 맛있었다고 감탄 감탄을 해서 언니랑 형부는 사 줄 맛이 났다고 한다. 여행 끝나고 하루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노트북에 저장하면서 갈빗집 사진을 봤는데 먹지도 않았을 밑반찬 사진이 더 많았다. 왜 찍었을까?
- 엄마 이런 반찬 좋아하잖아. 뭐 나왔는지 보려 주려고  하루가 찍었어.

후.. 지구뿌셔…


# 캠프장

이번 한국행 때 제일 기대했던 건 캠핑이었다. 어릴 땐 엄마가 계곡이며 강가며 엄마 친구 가족이랑 텐트 하나 버너하나 싣고 어디든 뚝딱뚝딱 지붕을 치고 놀았었다. 육지의 제일 남쪽 끝 바닷가에서 자고 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강이 깨끗하다고 하룻밤 더 잤던 일도 있었다. 딱히 캠프시설이란 곳도 별로 없던 시절, 그냥 계곡물에 양치하고 손 오므려 받은 물로 입 헹구고 그랬다. 그때 엄마 친구 큰 아들이 나보다 5살 많았는데 내가 초딩일때 고딩어빠.. 수영 못하는 나 좀 봐 달라고 엄마가 부탁해서 (후.. 엄마 나이스) 웃통 벗은 오빠 살갗에 맞닿은 채 계속 물놀이하는 동안 스릴 있도록 설렜었다. 반첫사랑의 기억. (남사스럽게 얼굴은 기억 안 나고 상체만 기억나네)

반대로 시아버지는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바빴고 시어머니는 여행을 가도 특급 리조트나 최소 별 4개 온천이 아니면 절대 집을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케군은 캠핑의 기억이 없다. 돈 주고 냉난방 없는 곳에 벌레 만나러 왜 가야 하는지 모르는 남자. 그래서 하루가 늘 꿈꿔왔던 캠핑을 나는 한국에서 실현시켜주고 싶었다.

한 가지 걱정은.. 내가 같이 못 가니 불안… 했지만 서녕언니 써네엉니가 생중계로 보내주는 동영상 속에 하루가 다행히도 엄청 웃고 있었다.
- 언니, 하루 화장실 혼자는 못 가게 해 줘. 엄청 귀찮게 안 해? 괜찮아?
- 어우야, 하루 진짜 혼자 다 하더라. 걱정이 없겠어. 그리고 엄마 없다고 눈치도 안 봐. 못 먹어요. 이거 해 주세요.  할 말 하더라.
너무너무너무 예상보다 훨씬 씩씩하게 잘해줘서 하루에게 정말 고마웠다.

하루 잠버릇이 점점 위로 올라가는 건데
언니들이 하루 텐트 뚫고 나가는 줄 알았다고 ㅋㅋ

#에어태그

다음날 아침 써네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하루가 에어태그를 잃어버려서 계속 찾고 있는데 어쩌지?
-에구… 괜찮아. 하루를 잃어버린 거 아니니까 그냥 잊어버리고 오라고 해줘.
에어태그에 눈을 뜬 케군이 본인 열쇠에 하나, 내 지갑에 하나, 하루 책가방에 하나, 하루 몸에 지니는 거 하나.. 무슨 바둑알도 아니고 한 줌을 사서 부적처럼 여기저기 붙여놨다. 그런데 왤까.. 한국에 도착한 후 하루 몸에 가지고 다녔던 에어태그가 작동을 안 했다. 동해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신호를 마지막으로 불통이 되었다. 일본 오면 다시 되는지 궁금했는데 결국 캠핑장에서 잃어버렸다.  에어태그는 해외 가면 안 되나? 써네 언니도 아이폰 유저라 아이폰이 근처에 없어서 작동 안 한 건 아닌데 말이다.


#엄마 캠프는 엄청 신기했어

뭐가?
계속 먹었어.


삼겹살 먹고

라면 먹고

닭꼬치 먹고

떡볶이 먹고

피자 먹었어

불꽃놀이도 했어.
;ㅂ; 하아… 나 이런 거 하고 싶었어… 계속 먹는 거…

#마지막 이야기

언니 티셔츠 형부 조끼입고 뒹굴뒹굴
아이덴티티나옴
이제 집에 가야지~

고생했지만 고향 바이브 다시 느끼고 무언가 잔뜩 충족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비가 마구 쏟아지는 날 길 하나 건너면 나오는 버스정류장에 하루랑 뛰어가는데 어느 20대 커플이 소리 지르면서 따라왔다.
“애기!!! 어디 가요!!! 우산 같이 쓰세요!!!”
젊은 사람들이 다급하게 소리 높여 사람을 돕는 소리는 내 고향에 와야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도움은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라고 의심치 않는 에너지 있고 밝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내 딴엔 도움인데 저분에겐 민폐면 어쩌지부터 생각해 버리는 도쿄 도민들과 살다가 한 번에 몰아서 몇 년치 친절을 받으러 오는 기분이다.  
또 역까지 가는 택시에서 단 5분 동안 본적이 어딘지 지금 사는데 어딘지 기차 왜 타러 가는지 목적지엔 누가 사는지 그 친군 거기서 뭐 하며 사는지 신상 털털 털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스무디 한 나라 ㅋㅋㅋ
위장이 늙어서 먹는 건 예전만큼 못 뽑았지만 원래의 내 컬처를 다시 복습하듯 충전을 했다. 나를 이루고 있던 많은 부분들. 그게 친절이든 오지랖이든 대담함이든 뻔뻔함이든 눈치이든 속물이든 무엇이 됐든 나를 구성하던 익숙한 문화들이 점점 옅어지려 했다가 다시 콘트라스트가 뚜렷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가는 보안 검색대에서 인천공항이 떠나가라 우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님이 다른 나라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지 할머니랑 줄을 섰는데 할미는 다리가 아파서 여섯 살배기 아이를 안아줄 수가 없고 아이는 불안하고 무서워서 죽을 것처럼 울고 있었다.
나는 진한 한국인이 되어 집에 가는 길이었으므로 망설임 없이 누룽지 사탕 한 개를 주며 달랬다. 아이는 뚝 그쳤다. 할머니가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셨다.

다시, 또 내가 옅어지기 전에 찾아갈게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