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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어느 부인께서 멋지게 옷깃을 세우고 영어권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심플하고 간결하고 머뭇머뭇하지 않았다. 어려운 단어 쓰지 않아도 원어민 같은 유창한 문장이 아니어도 너무 멋지다….

영어회화 학원은 온라인과 또 다른 맛이 있다. 신기하게도 온라인도 저 너머에 움직이는 튜터가 있는 건데 살짝 편지를 쓰는 것 같은 부끄러움과 어딘가 인간미가 덜 느껴지는 기분이 있다. 또 뭐랄까 닥치지 않았다는 미묘한 느슨함? 도 있다. 그런데 진짜 Face to face 수업은 창피함도 잊고 손짓 발짓 어떻게든 내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피어난다. 그래서 더 의사소통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다.

하루는 호주에서 오신 튜터가 자기 소개할 때 어디 사는지는 말하지 마세요 1. 자기를 어떻게 불러줬으면 좋을지랑 2. 뭘 좋아하고 취미가 무언지. 보통 이런 걸 말해요.라는 팁을 알려줬다. 몰랐네. 몰랐어. 수업 전에 나를 포함 일본 학생들이 저는 무슨 동네 살고요. 제 직업은 뭐고요 똑같은 말을 하니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ㅎㅎ

그 호주 튜터는 그림을 진짜 귀엽게 그리신다. 본인이 동글동글 저 그림처럼 생기셨다. 부산에 간다면 길거리 음식을 꼭 먹어볼 거야 라는 그림.

그리고 내가 바다에 놀러 간다고 했더니
이렇게 친절하게 Sea에는 놀러 가면 안 돼. 죽어. 여기까지는 beach란다. 맨날 망망대해 보러 간다. 망망대해 놀러 간다. 이런 말 많이 듣는데 그거 아니야~ 하고 차이점을 말해줬다. ㅋㅋㅋㅋㅋㅋ 몰랐어!!

그리고 새로 온 캐나다 남자 튜터와 너무 잘 맞아서 요즘은 그분 수업을 줄곧 예약했다.
일본에 온 지 1달이 됐는데 히라가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우유 마심 배 아파져서 아몬드 밀크나 오트밀 밀크를 사야 하지만 ‘가당’인지 ‘무가당’인지 죄다 한자라서 몸으로 부딪히며 살고 계시다. 많은 대화를 하다가 노아 (캐나다 튜터분) 씨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노아 튜터의 중독적 매력은 리액션이다.
-저 영어 배운 지 1년 조금 됐어요.
했더니. 할리우드 리액션으로
-왓!!!!!! 난 네가 10년 꾸준히 공부한 줄 알았어!! 오… 마이 갓!!! 내 여자 친구가 중국인이야 우린 10년 사겼지 난 4년간 중국어를 공부했어. 그런데 내 중국어보다 너의 영어가 월등히 잘해!! 난 믿을 수가 없어.
그리고 또 무슨 얘길 하다가
-전 41살이에요.
-왓!!!!! 그럼 1981년생인 거야?
-오. 그렇죠.
-나랑 동갑이야!!!! 난 네가 26살쯤 된 줄 알았어. You’re a super star!
미칰ㅋㅋ 무슨 칭찬 학원 다니나. 슈퍼스타라고 칭찬받은 날 묵음으로 한참 웃었다. 너무 욱겨서 소리가 안낰닼ㅋㅋㅋㅋㅋㅋㅋ
애가 있다니 놀래고 한국인이라니 놀래고 일본어도 한다니 놀래고 애도 한국어 일본어 둘 다 한대니 놀래고. 칭찬을 하도 들어서 버릇 나빠질 거 같다. 저 지금 추앙하세요?

난 반대로 갑자기 일본에 오게 된 노아 튜터한테 놀랬는데 말이다. 10년간 여자 친구와 동거하다가 어느 날 여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좀.. 인생이 재미없지 않아? 신나는 거 해 볼까?
그래서 평소 관심 있었던 일본에 오기로 했고 그녀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도중에 코로나 때문에 중국과 캐나다로 각각 잠시 헤어져 있어야 하지만 다음 달에 그녀도 일본에 도착한다고 한다. 노아씨는 캐나다에서 하던 역사 선생님 일을 그만두고 먼저 와서 일을 구한 것이다.
왓… 마흔한 살에.. 노후 대책 걱정에 안주하기 바쁠 거 같은 나이에 너무나 자유로운 분들이다. 존경스러워…
신나는 일을 해 보려고 온 여자 친구의 일상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노아 튜터는 자극적인 일본 생활을 하고 있다.
부동산에 월세 계약하러 갔는데 영문 사인이 있는데도 꼭 도장 파오라 그랬단다. 알파벳 도장 아니고 카타카나로 ㅋㅋㅋㅋㅋ 그래서 노아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눈이 진짜 퍼런색) 어이없다는 듯이 나한테 내 이름이 카타카나가 아닌데 카타카나 도장을 왜 파야 돼???? 아직도 팩스를 쓰더라?? 너 처음에 일본 왔을 땐 어떤 느낌이었어?
음. 나도 팩스 어쩌구 하길래 Where can I see that? at museum? 이런 느낌이었지.
ㅋㅋㅋㅋ 맞아 맞아 ㅋㅋㅋ
-근데 일본 디저트 왜 이렇게 맛있어? 토부 (백화점) 지하 가 봤어?
-거긴 천국이지.
-내가 프랑스에서 먹은 케이크보다 어제 편의점에서 먹은 게 더 맛있었어.
ㅋㅋㅋㅋ맞아 맞아 ㅋㅋㅋㅋㅋ
이런 진심으로 호소하는 이야기를 영어로 하니까 팍팍 와닿았다.

필리핀 튜터와 온라인 영어 수업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미주알고주알 내 사정을 다 아는 튜터가 어느 날 하루가 나타나자 하루에게 말을 걸어줬다.
-How are you?
하루는 몸을 배배 꼬며 웃기만 한다.
-하루야 겡끼? 하고 물어본 거야.
해석해 줬더니 발을 동동 거리면서
-알아!! 무슨 말인지는 알아!!
-What’s the weather there?
튜터가 물었다.
하루는 몸을 배배 꼰다.
-하루야 날씨 어떻냐고 하는 거야
-알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그렇게 아무 대답도 못하고 이어폰을 넘겨준 곰돌이는 사실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억울함을 느꼈다. 나 나름 3살부터 영어 교실 다닌 곰인데.. 이 말을 다 알아들었는데 목에 걸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 Rain도 알고 Sunny도 아는데 한 마디도 못하다니. 그날 내 레슨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가 하루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컴퓨터로 이거 영어 하고 싶어.
-진짜? 엄청 좋지. 그래 해 보자!
-엄마, 나도 엄마처럼 매일 하면 엄마처럼 영어 잘할 수 있어?
(ㅋㅋㅋㅋ 나처럼 이래 ㅋㅋ 매우 부끄럽지만 )
-그러엄!! 문장도 말할 수 있게 되지.

그날 바로 두어 개 키즈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체험 레슨을 신청하고 하루가 고른 회사에 가입을 했다. 여자 선생님은 부끄러운지 남자 선생님을 고집하는 곰돌이.
-엄마 나도 엄마처럼 친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친해지는 방법은 간단해.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고 끝내지 말고 자기 이야기를 하면 금방 친해져
-어떻게?
-날씨 어때요? 하면
-It was raining 하고 끝내지 말고 But I had not umbrella. 근데 난 우산 없었어요~이렇게.
-어려워~~~
-하루가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면 엄청 금방 친해질 거야.
하루의 영어 공부가 목적 없이 혹은 점수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라는 거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루의 온라인 영어 가입을 하고 보니 종류도 많고 더 좋은 서비스가 많아 보여서 내가 하던 온라인 영어도 바꿨다.
2021년 4월에 시작해 1년 4개월간 정말 큰 도움을 준 첫 온라인 영어를 떠났다. 1회당 약 30분씩 104시간 208회 수업을 했다.
난 산수 진짜 싫어하고 수학은 거들떠도 안 보는 사람이었는데 저 숫자들의 축적이 무엇보다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다이어트할 때도 매일 아침 체중계의 숫자가 그랬다. 꼭 숫자가 아니어도 그런가? 블로그 15년 하는 것만 봐도 내가 정상은 아니라 기록에 도른자라는 걸 느끼신 분들은 느끼셨으리라. 기록이 주는 희열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으나 내가 이뤄낸 게 한 둘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어필할 수 있는 파워가 있다. 정말 많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행동입니다.

요즘은 시간이 나면 하루랑 넷플릭스 LR(랭귀지 리액터: 자막 두 개씩 보여주는 언어 학습 확장 기능)로 영화 보기를 하고 있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매일 영화 조금씩 보면 안 돼?
-엄마는 이거 머리 말리면서 영어 공부하는 거야.
-하루도 할래
-그럼 그 대신에 일본어 더빙으로 안 듣고 무조건 영어 말로 들어야 하는데 괜찮아? 일본어 자막은 틀어줄 수 있는데 한자가 많아서 읽을 수 있을까?
-괜찮아. 해 볼게.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재밌게 보고 두 번째로 선택한 것은 맨 인 블랙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하루가 일본어 자막을 읽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은 건 체력검사뿐이군’ 이런 자막에서 하루가
-엄마 스테미너가 뭐야?
-어 체력, 힘, 튼튼함 이런 거야.
귀에 들리는 스테미너란 단어를 캐치해서 물었다.

스파이더 맨을 같이 볼 때는
-엄마 쿨! 이 멋있다는 말이구나?
자막과 음성을 대조해서 단어를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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