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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합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랑 도란도란 여행 정보 이야기하는 게 나름의 깨알 재미인데 아저씨는 많이 조용하셔서 닥치고 가만히 갔다. 냉정하신건가 조용하신건가 헷갈리는 경계에 있달까.

니가타 그랜드 호텔 Niigata Grand hotel

그런데 내리고 마지막에 다음에 또 택시 타실 일 있으시면 쓰세요. 하면서 300엔 할인 쿠폰을 주셨다.
-엄마, 아저씨 안 그래 보였는데 엄청 친절하시다.
하루가 말했다. 어린 너도 그렇게 느꼈구나 ㅋㅋ

시내 호텔은 스도마리 (素泊まり).
조식 석식 없이 오로지 잠만 자는 걸 말한다.
세 명이서 골든위크 2만 엔이었다.

그런데 요즘 여행 운이 영 꽝이라 여기도 첫날 어찌나 우중충하던지 비바람이 거세서 앞으로 걷기 힘들었다. 호텔 바로 앞엔 일본에서 가장 긴 강. <시나노 가와>가 흐르고 있었다.

물 불어서 공포시러움.

걸어서 도착한 곳은 <니가타 역사박물관> 밖에 옛 양식 건축물이 멋있는 곳이지만 날씨가 너무 안 좋아 건축물 돌아보는 건 포기했다.

제일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개개인의 리퀘스트를 꼭 하나씩은 들어주는 게 우리 집 여행 스타일. 하루는 여기 역사박물관에 꼭 가 보고 싶단다.

오… 사스가 쌀의 고장. 전통 생활용품 중에 볏짚으로 만든 애기 베시넷이 있었다. 이거 동남아 라탄 같기도 하고 스타일리시한데??

아무도 없어서 뻘쭘했지만 만들기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가했다. 박물관 선생님과 박물관 볼런티어 하시는 아주머니도 구경 중.

여기 선생님은 살갑고 상냥하셔서 이때다 하고 꼬치꼬치 물었다.
-오늘 골든위크에 금요일인데 아무도 없네요?
-보통 수족관 갔다가 주요 관광지 돌아보시고 시간 남으면 오시니까 초반엔 한가해요~
-그렇구나. 얘는 여기를 제일 와 보고 싶어 해서 첫 코스로 들렀어요.
-어멐ㅋㅋㅋㅋ 그래요? (신기해 눈빛 쏘심)
-니가타의 젊은 분들은 어디서 많이 모이고 놀아요?
-요즘은 니가타 역 근처가 제일 가게도 많고 많이 가는 거 같아요.
-그렇구나~ 타레카츠 동 먹으려는데 사람 많을까요?
-파는 데가 한 군데가 아니어서 사실 먹는데 어렵지 않아요. 가이드북에 나온 곳 어딘지 아는데 니가타 사람들은 요즘 <마사짱>에서 많이 먹어요.
-오?? 그래요? 처음 들어요.
-체인점이니까 한번 찾아보세요.
-역 근처 보니까 쇼핑몰도 많고 체인점도 많고 편리해 보이네요.
-그러니까요. 여기도 별 거 없는데 참… 니가타에… 오시네요? 여길 오시네…
ㅋㅋㅋㅋㅋㅋ 계속 박물관 선생님은 니가타에 여행 오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하필 왜 여길 오시지? 이런 뉘앙스로 계속 대화하셨다.
자신을 가지세요.

나중에 인터넷에 ‘니가타’ 찾아보니까 ‘관광지 볼 거 없음’ ‘놀 데 없음’ ‘사람들 차가움’ 이런 검색어가 줄줄이 따라와서 뿜었다. 현지 사람들 생각보다 되게 볼 거 많고 음식도 엄청 맛있는데 ㅎㅎㅎ
확실히 니가타 사람들이 서글서글하지 않고 무뚝뚝했다. 다들 관광객이 낯설고 어색해하며 여길 왜 왔지? 하는 느낌이었다.

건축양식이 예뻤던 박물관

5월의 니가타는 추웠다.
기모 티에 청자켓, 울트라 라이트 다운을 겹겹이 입고 갔다.

오자마자 코이노보리 (물고기 바람개비) 장난감을 만들어서 겟.

팔랑거리는 저 장난감은 의외로 3일간 잘 놀고 집까지 무사히 챙겨갔다. 많이 컸다.

뭐야. 포토존에 들어가서 왜 자기가 사진을 찍어.
지금 이 상황.. 뭐여… ㅋㅋㅋㅋ

관광 순환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시간표가 한참 지나도 버스가 안 왔다. 아 놔 관광하기 힘든 도시넼ㅋㅋㅋ 관광객을 신경은 쓰고 있는 거냐고.

오긴 왔다.
이제 보니 뒤의 고양이 흉내 내고 있었던 거구나.

버스를 타고 저녁밥 예약한 동네에 내렸다.
정말 니가타 시내는 할 게 없 ㅋㅋ 동네 구경을 할래도 거의 셔터가 닫혀 있어서 놀랬다.

유일하게 활기 있었던 활어와 해산물 시장.

안에서 생물을 바로 구워 먹고 술 마시고 하는 곳이었다. 친구랑 여행 가면 난 이런 데서 왁자 왁자 먹어 보고 싶다.

비까지 오는데 문 연데 보다
닫은 데가 많아 쓸쓸했다.

니가타의 명물 <사사 당고> 떡 체인점.

이 많은 가게들이 왜 문을 닫았을까.

도쿄에서 겨우 겨우 예약한 이자카야에 도착했다. 왜 겨우겨우 예약했냐면 평점이 엄청 높은 이자카야가 몇 군데 있는데 (대부분이 같은 계열사) 여행 가기 열흘도 전에 전화를 돌려보니 자리가 없단다. 전부 전화해 보고 딱 한자리 남은 유일한 이자카야였다.

와서 생각한 건데 워낙 장사하는 가게들이 없는 데다가 맛있는 곳을 추리면 선택지가 확 줄어서 그런 것 같다.

海老の髭 에비노 히게
새우 수염이란 뜻의 이자카야.

이 회사가 만든 이자카야는 다 평판이 좋았다. 십 년도 전에 케군이 니가타에 출장으로 왔을 때 예약 없이 갔다가 못 들어간 기억이 있다고 했다.

방으로 안내 받고 아직 주문하기 전

언니가 큰 냄비를 들고 왔다.

그리고 해산물과 어묵을 종류별로 보여주며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이게 니가타식 <오토오시> 인가 보다. 오토오시는 자리에 앉으면 하나씩 나오는 기본 안주 같은 개념이다. 치킨집의 팝콘 같은 거라고나할까. 대신 일본은 돈을 받지만 말이다. 요즘 오토오시 문화에 대한 반발도 생겨서 어떤 가게에선 오토오시 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굴을 골랐다. 너무 익어서 망함..
언니가… 자세히 설명을 안 해줌..
(너무 많은 걸 바랬나 ㅋㅋ)
여기도 말 걸기 힘든 분들 서빙하신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시고 뭔가 물어보면 혼난 것처럼 당황하셔서 왠지 말하기가 미안해.. 이런 문화 적응 안되네. ;ㅂ;

그리고 우리가 시킨 사시미 세트.
이걸 주문하는데도 한참 걸렸다. 3점, 5점. 단위가 이런 식인데 가격은 같아서 뭐지? 회가 3점 나오고 5점 나오는데 왜 가격은 같아? 열심히 이런 표현 저런 표현으로 물어봤지만 (일본어의 문제가 아님) 단답형으로 말하시니 뭔가 소통이 안됐다. 느낌적으로 2점짜리 시켰더니 같은 회를 2등분 할 건지 5등 분할 건지 커팅 사이즈랑 횟수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상 도톰한 회를 먹었다 ㅋㅋㅋㅋㅋ
근데 정말 꽉 차고 진한 사시미였다. 생각하니 다시 침이 고이네.

쌀로 빚은 술. 브랜드별로 쟁반을 채운 청주 세트.

살짝 표면을 구운 흰살생선 레몬을 춉춉 뿌리면 꿀맛이에요.

닭튀김!! 오랜만에 박수쳤다. 한국 후라이드 수준으로 맛있었다. 바삭하고 카레향도 나서 독창적이고

드디어 솥밥이 나왔다. 맨밥도 예술인데

밥 도둑새끼 총출동

서비스로 각종 절임과 연어알에 김조림, 연어구이도 주시네? 그럼 밥이 모자란데? ㅋㅋ 밥 더 시킬걸. (머리를 쥐어뜯음)

하아.. 밥이 뱃속으로 자꾸 사라진다.

하루도 너무 맛있게

밥을 흡입했다.

사람은 맛있는 걸 먹으면 바로 행복해집니다.

쌀 밥 더 내놔

없어요

연어 모형 인테리어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도쿄 사람들이 꽤 사무적이고 부끄러움이 많다 생각했는데 니가타 사람들이 한 수 위인 듯.

얘도 “아리가또..고..” 까지 말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단 걸 알고 조용히 나갔다 ㅋㅋㅋㅋㅋㅋㅋ

왔던 길을 되돌아서

유일하게 늦게까지 영업하고 있던 슈퍼에 갔다.

내일 아침에 먹을 오니기리를 사고

니가타 명물 쌀과자 고르기.
니가타에서만 살 수 있는 맛도 있었다.
넙데데 길쭉한 그 <하피탕>도 여기에 본사와 공장이 있는 니가타 출신 과자.

옵! 마트 안에 소문의 <미카즈키>를 발견했다.

이게 바로 야키소바에 토마토소스 뿌려 먹는다는 <이탈리안> B급 구루메 (서민요리나 노점상 음식을 이렇게 주로 부른다) 이걸 채울 배는 따로 있지. 포장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용기 내어 (이제 여기 사람들이 싫어할까 봐 용기가 필요해짐) 물었다.
-상점가에 가게들이 많이 문을 닫았네요? 코로나 때문에 그런가요?
-아니요~ 몇 년 전에 후루쵸에 있던 백화점 두 개가 문을 닫았거든요. 그 후로 급격하게 상권이 기울더니 이제 뭐 유령도시처럼 돼 버렸어요.
-아 그렇구나…
-그래도 이온 마트 있지요? 거기.
-네네. 거기서 이것저것 사 왔어요. 다행이에요.
-네. 이온 있으니까 다 해결돼요. 괜찮아요.

아…
백화점이 문을 닫는다고 동네가 달라지다니..
아…
마트 하나 있으면 만사 땡이라니…
인구가 넘쳐나고 늘 새로운 가게들이 들락거리는 서울과 도쿄에서 살아서만 그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렇게 소도시의 인구가 급감하게 되는 거구나. (이 문장 너무 솔직해서 어처구니없을 수도 있지만 느낀 그대로.. 전 촌스럽고 가난한 도시 사람이라 시야가 좁아서 그렇습니다 ;ㅂ;)

차례로 씻고

호텔에서의 2차 회식 시작.

-여보짱 먼저 먹어 봐.
비주얼에 쫄아서 케군한테 실험하기.
-어때?
-상상했던 맛이야.
난 상상이 안 가는데?
그리고 한 입 먹었는데… 음… 다 때려 넣은 맛일 줄 알았지만 뭔가 생각보다 쎄지 않았다. 야키소바의 소스는 색깔만큼 진하지 않아서 약간 소금간이 베이스로 깔린 정도의 존재감이었고 거의 토마토 맛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케군이 고른 <야스다 규뉴 가렛토>는 우유 버터 쿠키였다. 내 입 속 수분을 한 순간에 앗아가서 물을 엄청 마셨다. 이건 뭐라고 평해야 할지 모르겠다. 목마른 기억만 남긴 과자라? ㅋㅋㅋ
도움이 안 되는 평가라 매우 송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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