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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 여러 가게들이 모여 있는 복닥한 빌딩 2층에 내가 일하는 스파게티 집이 있다. 특색 있는 체인점이어서 적당히 마음 편하고 적당히 기분 낼 수 있는 곳이다. 점심 시간엔 근처 학생들 직장인의 단골 식당. 제일 인기메뉴는 명란젓 까르보나라랑, 계절마다 다른 제철 야채를 볶아 간장으로 맛을 낸 알리오 올리오, 그리고 마늘을 듬뿍 넣은 문어 페페론치노랑 낫또 스파게티도 유명하다. 아... 까르보나라랑 토마토를 반반 섞은 토마토 크림에 칠리소스로 맵게 만든 것도 빼 놓기 뭐하군. 아니야.. 타카나 (하카타 지방의 무 잎 절임) 를 맵게 볶아 마치 마제소바(비벼먹는 라멘) 처럼 맛을 낸 하카타 스타일 스파게티도.. 아무튼 다 맛있다.

큼큼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그날도 한 차례 폭풍처럼 점심 손님을 받아내고 결제하려고 줄을 선 손님을 해결하려 줄곧 레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때, 어느 고상한 중년 여자 분이 입점하셨다.
"이랏샤이마세 곤니치와"
계산하는 손을 움직이며 인사를 건네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세요" 하고 다시 계산에 집중했는데 여자분의 투덜이 시작되었다. 내 마음 속에 물음표 백만 개 부유 중. 베테랑 타무라상이 뛰어와서 불만 가득한 손님의 불쾌함을 끊임없이 받아주고 자리로 안내했다. 발 등에 급한 불들이 꺼졌을 때 쟁반들을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타무라상 아까는 감사했어요.
-아 아니에요. 저도 바쁠 때는 그냥 좋은 자리 앉으라고 말할 때도 있는데 왠만하면 자리를 안내해 줘요. 입구에 손님이 오래 서 있으면 우리 동선도 꼬이고 위험하니까요.
-저.. 근데 지금 살짝 컬쳐 쇼크 왔어요.
-왜요? ㅋㅋ 왜요.
-저는 손님이 원하는 자리를 자유롭게 정하는 게 더 나은 서비스라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에서는 가게 직원이 임의로 자리를 정하는 게 조금 손님의 의사를 마음대로 하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고급 식당에선 예약석도 많고 두리번 거리기 좀 그러니까 스마트하게 안내 받는게 더 좋은 서비스긴 하지만, 이런 대중 식당에서 직원들은 거의 가게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거니까 자유롭게 앉으세요~ 하면 손님 입장에선 좋을 거 같거든요? 근데 그 손님분이 엄청 불쾌해해서 너무 당황했어요.
-오.. 그렇네요. 호오...호오... 일본사람들은 자주적인 행동을 못해서 누가 정해주면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할까. 다른 데는 없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정해주는 걸 선호하는 거 같애요. 그 자리가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자기가 정하려고 우왕좌왕 기웃거려야 하는게 부끄러워서 그게 더 싫은 사람이 많은 거 아닐까요?
-와.... (부끄럽구나…) 사실은요 지금까지 가게 메뉴얼이니까 들어오시면 자리 안내하긴 했는데 할 때마다 저 되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했거든요.
-미안했다구요? ㅋㅋㅋ 지금까지요? ㅋㅋ
-네 ㅋㅋㅋㅋ 아 이제 송구함 없이 강력하게 앉으라고 해야겠네요.
-네네 ㅋㅋㅋ 좋아한다구요 ㅋㅋㅋㅋ

일하면서 느꼈던 새로운 것 중에 하나가
일본 사람들은 값 싼 점심 한끼를 먹는 순간에도
내가 이 가게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가게 운영에도 배려를 해 가며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꼈다.

스무 살 대학생 남자들이나 여고생들까지 좁은 자리에 꾹꾹 눌러 앉거나 하는 걸 보면 천성이 이렇게 착할 수가 있나 사람이 철을 이렇게 빨리 단체로 들 수가 있나 놀라웠다. 그나이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애들이랑 시끄럽게 깔깔대고 한 접시 4명이서 나눠먹고 그랬다. 가게 사람들이 눈쌀을 많이 찌푸렸겠지만 눈치가 보이기는 커녕 눈치도 못 챘다. 누가 따끔하게 혼내서 겨우 배워왔던 거 같다. 그렇게 남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아는 일본인들 보면 존경스럽다가도 자리 마음대로 앉으랬는데 스스로 정하기 어색해서 툴툴대는 아줌마를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군 싶고. ㅋㅋㅋㅋ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자주적이지 못한 거랑은 다른 이야기인가?

난 어느 허름한 동남아 식당에 가서도 비집고 자리잡는 사람. 격식 차린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안내 받은 자리에 앉는 사람. 고르라면 마음 껏 고르는 사람이 되야지… 라고 쓰려다가
아니, 앉으라는 자리가 맘에 안 들면 부드럽게 다른 데는 없을까요 물을 수 있는 사람. 고르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으면 상냥하게 제가 앉을 수 있는데는 어디일까요 다시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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